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병기 (대진대학교)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강진다산실학연구원 다산과 현대 다산과 현대 제11호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209 - 237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다산 정약용이 해배되어 1818년 9월 고향 마현으로 돌아온 뒤 1836년 여생을 마칠 때까지 약 18년간 인적 교류를 통해 지속된 다산의 학문적 성과를 검토한 논문이다.
현재 다산학이라고 명명하는 학적 시스템은 실상 강진 유배기에 완성되었다. 다산은 일반인의 지성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냉철함을 유지했던 인물로 보이는데, 폐족이 되어 쫓겨간 유형지에서 작심한 듯 저술작업에 몰두하였다. 첫 유배지인 경상도 장기에 도착해서 훗날 「이담속찬(耳談續纂)」으로 수정․보완되는 「백언시(百諺詩)」를 지은 것을 시작으로 전라도 강진으로 이배된 후 해배될 때 까지 그의 경학과 경세학의 체계가 완성되었다. 육경사서의 경학서와 일표이서로 대표되는 경세서가 이때에 완성되었다. 물론 일부 미완인 상태에서 해배되어 고향 마현에서 탈고한 것들이 있고, 이미 완성된 책들도 지속적으로 수정작업을 진행했지만, 그 골격은 강진에서 이루어졌다.
57세의 나이에 고향에 돌아온 다산은 이후의 행적과 자료들에 근거해 볼 때 대체로 강진에서만큼 치열한 연구와 저술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잔병이 많고 백발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간의 성과를 수정 보완하는 정도로 남은 인생의 목표를 잡았던 것으로 생각되고, 근교를 유람하면서 소요유의 삶을 살고자 했던 것 같다. 사실 그의 경학과 경세학 체계에 있어 그다지 남은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성과에 대한 후인의 평가를 기다릴 뿐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여생에 만난 신작과 이재의, 김매순, 홍석주 형제 등은 다산의 성과들이 평가되는 과정에서 만난 행운이자 기쁨이었다.
신작과 김매순 등의 노소론계 학자들의 학문이 주자학을 부정적으로 계승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들이 한학을 긍정하면서 훈고학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자학을 부정하거나 긍정하거나 하는 데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한학이든 송학이든 어느 것이 진리에 가까운가 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이다. 다산의 경학은 주자학의 연장인 면이 있지만 개념의 지시내용이 다르다는 점에서 반주자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송학의 경학적 지향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보면 주자학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산이 한대 경학을 비판한 것은 그들의 근거없는 난삽한 주석들을 불신한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대 학자들이 주석을 위한 주석을 했을 뿐 세상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어떠한 지향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데 비판의 초점이 있다. 훈고를 하기 위해 훈고를 하였을 뿐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없다는 것이 비판의 초점인 것이다.

목차

1. 머리말
2. 인적 교류와 학술 논쟁
3.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9-151-000515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