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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형호 (무형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66輯
발행연도
2017.11
수록면
33 - 59 (27page)
DOI
10.21318/TKF.2017.11.6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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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풍물이란 용어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고, 20세기에 들어와서 어떤 사회적 의미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중심으로 규명했다.
풍물은 조선시대까지 궁중에서 주로 악기 및 음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초기에 와서 민족적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들이 풍물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곧 1923년 마산의 노동동우회 노동절 시가행진, 전남 함평의 노동친목회 야학경미 마련을 위한 시가 행렬이 친일세력과 충돌하면서 당시 일제 경찰이 동원되는 큰 사건으로 비화된다. 따라서 이들 집단은 불온한 집단으로 낙인찍히면서 억압과 감시를 받게 된다. 당시 사용된 풍물은 일제에 대한 저항적 민족주의 운동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한편 1923년 연말에 실린 잡지 『개벽』의기사도 사회주의자와 관련이 있다. 이런 이유로 풍물이란 용어는 이후 사용될 수 없었으며, 1920년대 중반부터 농악이란 용어가 일제의 교묘한 이중적 정책과 `브나르도운동`과 맞물려 일반화되었다. 1930년 후반에 강릉농악 관련 풍물 기사도 후에 월북한 이여성의 글이며, 이것 역시 민족적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다.
이후 풍물은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문화운동권에서 다시 사용하며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민중문화운동가들은 기존의 농악 용어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풍물에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부여하여 문화운동권의 용어로서 다시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변혁성, 대동놀이성, 인간해방성, 종합예술성 등의 새로운 개념이 가미되었다.
현재 1920년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풍물과 1970년대의 민중문화운동의 풍물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 관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존 농악이란 용어에 대한 거부감, 노동·농민운동의 측면, 사회 저항 및 변혁적 성격 등은 공통적이며, 양자의 관련 개연성도 있다고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풍물은 조선시대에 궁중의 악기 및 음악이란 의미에서 벗어나, 20세기에 들어와 문화운동집단에 의해 기존 농악이 갖는 한계를 벗어나서 사회문화운동, 사회변혁의 의미를 지닌 새로운 의미로 등장하게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풍물 용어에 접근하는 이유
Ⅱ. 조선시대 문헌에 나타난 풍물(風物)의 의미
Ⅲ. 20세기 풍물의 사회문화적 의미 변화 양상
Ⅳ. 20세기에 풍물이 문화운동 용어로 수용된 배경과 의미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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