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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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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동북아학회 한국동북아논총 한국동북아논총 제60호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69 - 86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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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明治)유신 이후, 부국강병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온 일본은 그 당연한 귀결로서 서구적 근대화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일본사회를 빠르게 문명화과정에 진입하게 하였으며, 급기야 문명을 척도로 한 국가와 개인의 구분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원래 일본사회 내부에서 일반인들을 구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서양 문명의 가치를 이해시킬 목적으로 전개된 계몽은 일본의 대외정책에서 주변국을 인식하는 렌즈로 변화해갔다. 문명의 진척 정도에 따른 개인이나 국가의 서열 구분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를 비롯하여 다수의 지식인, 정치인들의 언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식 틀로서 곧바로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는 시대적 사조가 되었다. 문명은 인간생활이 지향해야 할 목표로 여겨졌고, 이를 위해서는 구습으로 치부되는 것들과의 단절이 강조되었다. 일본사회 전반으로의 문명의 침투는 일본 외부로의 문명의 전파로 이어졌는데, 후자의 경우 제국주의적 폭력을 바탕으로 수행되었다. 전근대 전통시대에 일본은 중국문명의 주변에 속하였지만, 메이지 이후의 일본은 동아시아 3국 가운데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것을 계기로 동아시아에 서양문명을 이식하는 사명을 스스로에게 부여하였다. 대만과 조선의 식민지화는 곧 일본이 앞장서 선취한 ``문명의 외연(外延)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본고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중심으로 조선에 대한 일본 지배가 문명의 외연화 과정의 필연적 귀결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되어간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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