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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윤대원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1집
발행연도
2018.2
수록면
121 - 154 (34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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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34년 이후 일제가 실행한 세 차례의 김구 암살 공작의 실상을 밝히는데 있다.
윤봉길의거 이후 조선총독부 파견원은 1, 2차 김구 암살 공작을 실행했다. 그리고 이들은 상하이일본총영사관 경찰부와 협력하여 3차 김구 암살 공작을 실행했다. 1차 공작은 1935년 1월 나카노 파견원이 밀정 오대근을 동원하여 실행했으나 실패했다. 2차 공작은 1935년 8월 이후 히토스키 파견원이 밀정 위혜림을 내세워 실행했으나 실패했다. 특히 이중 첩자인 위혜림과 암살자로 믿었던 무정부주의자 정화암이 히토스키의 계획을 역이용하여 공작금 300원을 가로챘다. 3차 공작은 일본총영사관 경찰부와 조선총독부 파견원이 협력하여 추진했다. 이들은 김구의 통일운동에 불만을 가진 박창세를 회유 매수했다. 박창세는 반김구파인 이운환을 사주하여 김구를 암살하게 했다. 1938년 5월 7일 창사에서 일어난 ‘남목청사건’이 곧 3차 공작의 결과이다. 세 차례 암살 공작에는 모두 밀정이 등장한다. 오대근은 국내에서 청년 사회주의운동을 하다가 상하이로 와서 공산주의운동을 벌였고, 위혜림과 박창세는 밀정이 되기 전까지 임시정부등 민족운동에 종사했다. 이들이 밀정이 된 데는 오대근처럼 운동의 기반이 무너지면서 낙오하거나 아니면 위혜림과 박창세처럼 경제적 어려움 또는 개인적 약점 등이 원인이 됐다. 일제 경찰은 이런 개인들의 약한 고리를 파고들어 회유 매수하여 밀정으로 만들었다. 일본 경찰은 이들을 통해 김구 암살은 물론 독립운동에 대한 정보 파악 및 분열 공작 등에 이용했다.
결국 일제의 김구 암살 공작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일제가 밀정을 통해 중국 관내 독립운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고 또한 독립운동 내부의 분열과 내홍을 획책하는 일면을 잘 보여준다.

목차

1. 머리말
2. 1차 암살 공작과 밀정 오대근
3. 2차 암살 공작과 밀정 임영창
4. 3차 암살 공작: ‘남목청사건’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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