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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종덕 (靑花學術院)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64호
발행연도
2017.8
수록면
77 - 110 (34page)
DOI
10.15299/jk.2017.08.6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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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사상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정착하면서 자신이 주거하는 공간 또는 함께 살아가야 할 공간의 선정에 따른 합리적인 필요성에 의하여 일찍부터 기층민의 관심을 받았다. 따라서 풍수는 고대인의 잠재적인 관념과 맞닿아 있었다.
고대인의 세계관에서 가장 친숙한 것은 산이었다. 산은 하늘과 바다의 접점에 해당되는 지역이므로 고대인들은 산을 신성하게 여겼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를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었던 용을 산의 혈맥으로 보았다. 한편 이러한 고대인의 세계관은 죽음에 대해서도 영향을 끼쳤다. 사후에도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만 바뀌었을 뿐 현세와 같은 정신적 물질적 생활을 계속한다고 생각하였다.
산 또는 토지에 대한 고대인의 관념은 토지신으로 구체화되고, 삼국시기 불교 경전인 『불설지심다라니경』을 통해 관념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경전은 僞經으로, 토지신을 추앙하면 모든 재앙이 사라지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불설지심다라니경』에서 석가모니가 자신의 묘소의 토지신에게 설법함으로써 석가모니와 토지신이 합일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층민의 토지신에 대한 추앙은 나말여초 도선선사에 의하여 사상으로 체계화되었다. 그런데 도선선사가 풍수지리사상을 배웠다는 異人에 대한 설화에서 그를 지리산 일대 토산신인 성모천왕으로 묘사되고 있다.
도선의 영향을 받은 고려 태조 왕건은 풍수와 불교를 대민지배에 적극 이용하였다. 이점은 풍수지리사상을 단순히 국가건설의 기조로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었던 기층민들의 민심을 이끌기 위한 장치로써 이용하였다고 보인다.
한편 이러한 부분은 당시 구산문을 세운 선종의 선사나 호족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산문의 입지가 비보로 이루어진 것은 당시 기층민을 안정화시키는 일면도 있다. 그리고 그 입지가 충적토로 이루어진 넓은 경지와 교통로를 끼고 있다는 점은 나말여초 유망하고 있던 기층민을 포섭하고 그들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일조를 하였던 것이다.
고려 중기에도 이러한 기층민의 정서는 이어졌으며, 토지신을 음양에 의하여 길흉화복을 좌우하는 존재로서 인식하였다. 즉 풍수사상은 사회규범으로 통용되었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풍수지리사상에 대한 諸說 검토
3. 풍수지리사상의 기반
4. 풍수지리사상의 형성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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