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혜경 (대구가톨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회사연구소 교회사연구 敎會史硏究 第49輯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7 - 53 (47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알렉산드로 발리냐노는 예수회가 파견한 두 번째 동인도 지역의 순찰사로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시작한 인도와 일본 선교의 토대를 다지고
중국 선교의 물꼬를 틈으로써 아시아 선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순찰사로서 험난한 아시아의 바다를 다니며 인도와 일본의 문화적인 차이를 깊이 인식했고, 아시아 선교의 베이스캠프를 고아에서 마카오로 옮겼으며, 이를 통해 일본과 중국 선교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을 순찰사로서 또 선교사로서 세 차례 오가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일본 통일의 주역과 근대화의 일꾼들을 만남으로써 그들의 국제적인 움직임을 보게 되고 극동아시아 3개국의 국제 관계를 인식하게 되었다.
발리냐노가 인식한 조선은 중국의 동쪽 끝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위치한 유럽에 비견할 만한 우수하고 진보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며, 중국과 같이 강한 쇄국정책을 쓰고 있으며, 일본에 의해 짓밟히고 있는 나라라는 것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임진왜란)으로 인해 일본 열도에는 조선인 포로들로 넘쳐났고, 히데요시 부대의 군종신부들을 통해 조선인 포로 대상의 개종이 있었으나 이후 일본교회의 운명과 함께 사장되고야 말았다.
전쟁을 통해 조선이 처음 만난 그리스도교는 일본군과 함께 온 야소회 혹은 기리시탄이었고, 선교사들은 불교 선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훗날 이벽과 이승훈 등 조선교회의 선각자들이 중국을 통해서 만난 그리스도교는 자(字)를 앞세운 천학(서학)이라는 이름에 유학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순찰사인 발리냐노가 있었다. 그의 허락에 따라 선교사들의 생활양식과 선포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교회의 설립이 세스페데스 신부 등 왜란 시기에 찾아온 일본의 군종 신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벽, 이승훈에 의한 18세기 초일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그 중심에 발리냐노가 있었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 초록
들어가면서
1. 16세기 후반 아시아 순찰사로서 발리냐노
2. 왜란 시기 선교사들이 전한 조선 관련 정보
3. 발리냐노의 조선에 대한 인식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7-236-002196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