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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영수 (명지대학교)
저널정보
명지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미술사와 문화유산 미술사와 문화유산 제5집 특별호
발행연도
2016.11
수록면
161 - 18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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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완성된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진경산수화풍은 18세기를 거쳐 19세기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논문에서는 19세기 정선 그림의 계승 양상을 도암(陶巖) 신학권(申學權, 1785~1866)의 그림을 통해 살펴보았다. 신학권은 고령신씨(高靈申氏) 사주공파(沙洲公派)의 후손으로 서화와 부(賦)에 능하여 삼절(三絶)로 불렸던 문인화가이다. 그는 주로 정선의 그림을 모사한 금강산도를 제작했으며 19세기 성리학자인 송래희(宋來熙, 1791~1867)에게 <풍악내외도>를 보내주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신학권은 그림에 붙인 서문에서 그 당시 금강산도 중에 정선의 그림이 가장 뛰어나 민가에 많이 퍼져 있으며, 정선의 그림이 낡고 더러워져 유실될 것을 염려하여 모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신학권의 《금강산도첩》(1856)은 도식화 경향과 함께 정황(鄭榥1735-?)고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이후)의 화풍이 습합(習合)된 현상을 보여준다.
《금강내산총도》 8폭 병풍(1856)은 그동안 화첩이나 선면에 그려지던 ‘전도식 금강산도’가 병풍 형식으로 확대,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18세기 후반부터 유행한 병풍장식그림과 관련된 것으로서 대부분 병풍으로 제작된 민화금강산도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 이 그림에서 신학권은 초기의 얌전하고 도식화된 경향에서 벗어나 한층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필묵법을 구사하였다.
신학권의 금강산도는 비록 모사작이지만, 정선의 그림이 19세기로 전승되면서 변화된 양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정선의 화풍이 민화금강산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 과정의 일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목차

Ⅰ. 서론
Ⅱ. 신학권의 생애와 작품 제작
Ⅲ. 신학권의 금강산도에 나타난 특징
Ⅳ.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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