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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문동석 (서울여자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38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39 - 63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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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년 7월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은 13만 대군을 동원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이 나당연합군 중 신라군의 주요한 역할이 무엇이었을까? 나당연합군은 7월 10일 백제 사비성 남쪽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백제군에게 막혀 약속 날짜를 어겨 7월 11일에 도착하였다. 이에 소정방은 약속한 날짜보다 늦게 도착한 신라군의 책임을 물어 督軍 김문영을 참수하려고 하였다. 왜 소정방은 신라의 주요한 장수 중 유독 김문영을 죽이려고 하였던 것일까? 이는 김문영이 독군이라는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독군은 신라군의 전반을 감독하는 지휘관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중국 사서의 용례를 볼 때 ‘督軍’은 후한 광무제대에 처음 등장하여 군사지휘관이라는 뜻으로 통용되었으나 魏나라부터 督軍糧御史등과 같이 군수물자의 보급과 관련된 직무를 병기하면서 그 임무가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고려사》, 《고려사절요》를 보면 ‘독군’ 뒤에 양식 糧자가 공통적으로 붙어 있음으로 볼 때 김문영은 독군양어사일 가능성이 높다. 김문영을 포함한 신라군 5만은 13만 당나라군의 병참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 주요한 임무였을 것이다.
한편 신라군은 황산벌에서 백제군의 지연작전에 말려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그 결과 약속한 날짜에 당나라군에게 보급품을 전달하지 못하였다. 군대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죄가 크다. 따라서 신라군의 입장에서는 황산벌 전투가 얼마나 치열하였으며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관창이 필요했다. 신라 왕실은 관창의 장렬한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적장이었던 계백을 영웅화 했다. 백제 영웅 계백에 맞서 두 번의 싸움 끝에 장렬하게 죽은 관창, 이보다 더 극적인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督軍’을 통해 본 신라군의 성격
Ⅲ. 백제의 사비성 방어전략과 以逸待勞
Ⅳ. 황산벌 전투와 신라의 영웅 만들기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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