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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아시아학회 아시아연구 아시아연구 제17권 제2호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31 - 5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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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왕조시대에 존재했던 독특한 세계관으로 인해 꺼잉족을 비롯한 각 종족집단에게 나타나는 느슨한 종족성(ethnicity)은 영국의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을 가장 극명하게 나타내는 집단이 꺼잉족이다. 버마족이 중심이 된 미얀마의 왕조시대에 있어서 꺼잉족은 노동력과 경제적 자원의 수탈 대상으로 오랜 세월동안 핍박을 받아왔다. 영국이 미얀마로 진출하기 시작한 19세기는 폭력과 소외로 얼룩진 상실의 역사 속에서 절치부심하던 꺼잉족이 버마족 사회에 대한 통합 및 동화에의 거부라는 결과를 나타내던 기간이었다. 이 기간에 유입된 영국 식민주의와 기독교 및 고도의 물질문명은 버마족으로부터 핍박받는 피지배자 계층인 꺼잉족에게 버마족에 대한 항거 의식과 사회적 향상에 대한 열망 표출의 뇌관 역할을 했다. 따라서 꺼잉족은 영국이 도입한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꺼잉족의 기독교에 대한 충성심은 나아가 영국 식민정부에 대한 충성으로 확대되어 영국의 식민정책에도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왕조시대에 느슨했던 꺼잉족의 집단적 경계와 종족성은 영국식민시대를 기점으로 고착화되었다. 이것은 오로지 영국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꺼잉족의 적극적인 개입에 의해 꺼잉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계발해 나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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