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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천학연구 인천학연구 제15권
발행연도
2011.8
수록면
233 - 267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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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학파의 『노자』 연구가 다른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유학의 이념을 벗어나서 새로운 세계관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불과 다섯 편의 현존 『노자』 주석서 중에서 이충익의 『초원담로』만이 유학의 세계관을 이탈해 불교와 노자 등의 시각을 그 주석에 반영했으니, 이것은 이광려의 「독노자오칙」이라는 선행 연구에 힘입은 것이다. 신작의 『노자지략』 또한 이광려의 영향으로 노자 그 자체의 시각이 강하게 가미된 것으로 판단되지만 그 서문만 남아 있어 자세하게 확인할 길은 없다. 상수학적 시각으로 주석된 서명응의 『도덕지귀』는 다소 예외지만 조선시대 『도덕경』 주석사는 성리학의 명분론을 탈피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다. 대부분의 『노자』 주석 학자들은 원시유학으로의 복귀를 통해 성리학적 세계관을 탈피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광려의 영향을 받은 이충익은 원시유학마저도 떠나버린다. 이런 점에서 이광려의 「독노자오칙」이 비록 조선시대 『도덕경』 주석의 한 부분을 점유하지는 못할지라도 큰 역할을 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이광려는 『노자』 81장 가운데 1장·2장·39(9)장에서 필요한 구절을 취해 자신의 사상을 압축해서 표현했다. 이광려가 보기에 ‘진리’[道]의 세계는 ‘실질’[實]의 세계로 ‘이름’[名]으로 드러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는 실질을 이름으로 드러내면, 그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이름에 집착하기 때문에 실질 그 자체를 드러낼 수 없다고 한다. 그는 『노자』 2장을 풀이하면서 옛날에 성인들께서 아름다움과 선함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한다. 이광려의 이런 시각은 文과 質의 조화를 추구했던 공자의 사상마저도 벗어난다. 공자는 ‘명분’[名] 곧 文만 추구하는 당시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그 명분에 걸맞은 ‘실질’[實質]을 갖추어야 된다고 했는데, 이광려는 『노자』의 설명을 통해 그 명분을 없애야 사람들이 실질의 세계로 돌아온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점이 그 후학들 곧 이충익과 신작에게 원시유학마저 벗어버리게 하는 사상적 자유를 주었던 것이니, 조선시대 지성사에서 그 영향이 지대했다고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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