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후지무라 마이 (광운대학교)
저널정보
인물미술사학회 인물미술사학 인물미술사학 2012 / 제8호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143 - 177 (3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일본 전후사(戰後史)에 있어서 1950년대는 패전으로부터 전후 민주주의시대로 이행한 1940년대 후반기와, 본격적인 고도경제성장기를 맞이하는 1960년대 사이의 과도기적인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945년부터 약 8년에 이른 미군의 ‘점령’시대를 겪어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공포에 의해 주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강화조약과 동시에 체결된 일미안보조약과 미군의 존재는 실질상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을 유지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 전쟁을 계기로 하여 일본은 냉전구조 속으로 통합되어 패전 직후부터 미국이 진행한 ‘일본의 민주화, 비군사화’ 방향을 역행하는 이른바 ‘역(逆) 코스’를 향하게 되었다. 일본 공산당과 그 동조자에 대한 공직 추방(red purge), 피의 메이데이 사건, 타치카와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둘러싼 수나가와 투쟁, 그리고 1960년에 일어난 일미 안보조약 반대 투쟁(안보투쟁) 등 다양한 정치적 혼란에 농락된 시대가 바로 1950년대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역시 한국전쟁을 계기로 한 전쟁특수 때문에 일본 경제력은 전쟁 이후의 힘든 부흥경제를 탈하고 자립 경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호경기와 주권 회복을 배경으로 TV방송시작, GATT 가입, 유엔 가입, 도쿄 타워 완성 등이 이루어지고 1956년 경제백서는 ‘이미 전후가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는 본격적인 고도경제 성장을 시사한 것이었다.
정치적인 불안감과 경제적인 성장이라는 양면성을 보여 준 1950년대는 한편에서는 민중들의 힘이 쏟아진 시대였다. 패전 직후부터 노동조합이 개방되어 각종 노동운동이 고양되었다. 노동운동의 고조와 호흡을 맞추어 다양한 문화운동이 전개되었는데 이런 상황은 1950년대가 민중의 시대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센다 우메지(1920~1997)는 바로 이런 시대에 탄광노동자 및 판화가로서 활동했다. 그의 활동의 무대는 규슈지방 북부에 있는 치쿠호 탄전이었다. 치쿠호 탄전은 일본 최대급의 탄전으로 일본의 근대화와 제국주의, 그리고 전후 부흥을 밑에서 지탱한 곳이다. 센다는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채탄에 종사하는 탄광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을 그렸다. 그가 그린 사람들은 일본을 땅 밑에서 버틴 사람들이자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본 논문에서는 센다 우메지의 그림이 의미하는 것을 일본 탄광의 역사 및 1950년대 문화운동의 흐름과 함께 분석하고 일본에 있어서의 민중미술의 전개 과정과 현재적인 의미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일본 탄광의 역사
Ⅲ. 센다 우메지와 탄광
Ⅳ.우에노 에이신(上野英信)과의 만남
Ⅴ. 『지하전선(地下戦線)』으로부터 ‘그림이야기’로
Ⅵ. 미술 서클과 목판화
Ⅶ. 센다 우메지가 그린 여성노동자
Ⅷ. 나가며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s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6-650-002120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