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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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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디자인문화학회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 제17권 제2호
발행연도
2011.6
수록면
322 - 335 (1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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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술전람회는 독립을 향한 식민지 민중과 지식인들의 관심을 미술계로 돌리려는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그 안에서 ``서·사군자부``의 폐지와 함께 1932년(제11회)부터 신설된 ``공예부``는 기존의 봉건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유도한다는 언론 플레이 속에서 창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공예가들은 전람회라는 근대 시스템 안에서 일본인 심사위원의 구미에 맞는 작품만을 되풀이해 제작함으로써 새로운 창작개념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일제의 식민지 문화정책이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에 끼친 영향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당대의 미술창작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 타진해보고, 이를 통해 미술창작의 올바른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의 주된 범위에는 식민지 문화정책과 이를 통해 마련된 조선미술전람회의 실태, 그리고 공예부 설립의 원인과 출품작의 일본화 경향에 대한 분석들이 포함돼 있다. 이론적 배경은 국내 단행본·학위논문·국내 학회지에서 발표된 논문 등을 선행연구로 활용하였고, 조선미술전람회 당시 발행된 「동아일보」·「매일신보」·「조선」등의 신문·잡지매체를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공예부의 작품분석은 1930년대 발행된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본 연구는 그 결과로서 자유로운 창작은 미술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역사적 환경이 보장된 시대속에서 가능하며, 과거의 강제된 권력에서 벗어나 열린 지평 속에서 새로움을 창조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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