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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광재 (국사편찬위원회)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 제48호
발행연도
2015.7
수록면
337 - 36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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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이후 국권 회복이라는 숭고한 목적을 위해 상해에 모여든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였다. 1920년대 이래 독립운동이 장기화되면서 연만한 지도자들은 상해에서 타계하여 현지에서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1920년 4월 만주에서 상해로 온지 한 달도 안 되어 지병과 장티푸스가 겹쳐 타계한 안태국의 경우는 그 첫 번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태국 이전에도 상해에서 사망한 한인들이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주목된 경우는 없었다. 안태국 장례식은 상해 한인사회의 첫 번째 대규모 장례식으로 교민단의 사회장으로 거행되었다. 때문에 안태국 장례와 관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장례를 준비하고 진행하였다. 장례식 때 안창호, 손정도, 김병조와 이동휘 등은 애끓는 추도사를 했으며 그를 통해 동지의 사망에 대한 절절한 심정을 토로하였다. 남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민들은 안태국의 순국과 장례를 통해 결속을 다지고 이후 독립운동을 더욱더 굳건하게 추진해갈 것을 다짐하였다.
요컨대, 안태국에 대한 장례는 임시정부와 상해 한인사회에 의해 장례가 주도되었던 측면이 강하였다. 안태국과 인연을 맺었던 남은 자들이 그에 대한 기억, 그의 상실이 지닌 의미 등을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장례가 진행되었다. 장례라는 의례는 사자와 남은 자들, 그리고 남은 자들 사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속한 사회의 결속을 강화하여 개인이나 집단의 삶에 의미부여와 집단의 정체성을 강화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안태국의 상해행과 순국
3. 안태국의 장례식 거행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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