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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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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불교학보 불교학보 제48집
발행연도
2008.2
수록면
315 - 338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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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塔婆 建立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것은 곧 舍利信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文獻에 따르면 최소한 1세기 무렵에는 佛舍利 信仰이 중국에 전해졌다. 塔은 곧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藏置이니만큼 建塔 佛事는 곧 舍利信仰의 窮極이며, 이러한 사리신앙의 흥륭은 곧 同代우리나라의 사리신앙과 사리장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인도로부터 불교를 전해 받은 중국에서도 佛舍利를 생전의 석가모니와 똑같이 인식하는 관념이 처음부터 있었고, 인도와 마찬가지로 사리신앙으로까지 승화되어 있었다. 사실 사리신앙은 그 자체로만 보더라도 불교사에 있어서 매우 흥미 있는 대상이 되겠지만 불교미술사적 입장에서도 舍利莊嚴이라는 걸출한 불교공예를 탄생 시킨 모태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될 수밖에 없다. 특히 불교 전래의 초기인 2세기부터 7세기 초반까지는 중국 불교 전래의 黎明에 서 중국식 불교가 완성되어 가는 시점으로, 사리장엄이라는 면에 있어서도 그 후대와는 구분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대 사리장엄의 유례는 극히 일부분이다. 隋만 하더라도 그 수가 아주 적어 唐代이후에는 숱하게 많은 사리장엄이 나타나는 것과는 크게 비교가 된다. 六朝와 隋의 사리신앙은 중국 사리신앙의 기본이다. 현재 六朝時代사리 안치의 여러 현상에서 분명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사리 봉안의 법칙이 作法에 따라 충실히 이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地下 1丈 남짓한 깊이에 매장된 石函, 거기에 안치된 佛舍利, 석함 위에 놓여진 塔銘, 여러 차례 사리 용기를 棺의 형상으로 한 것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이미 六朝時代에 있어서 정착된 사리 봉안의 慣例인 듯하다. 그리고 이것은 隋에게까지 연결되었다고 보인다. 隋의 사리장엄 자체는 六朝와 마찬가지로 遺例가 많지 않지만, 대신에 사리장엄을 넣었던 地宮, 곧 탑의 지하시설 등은 唐에게로 이어졌다고 보인다. 唐代의 대부분 불탑에서 는 이러한 地宮을 설치하였고, 이는 六朝時代에 나온 舍利의 地下埋納 풍습이 전해져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隋의 地宮과 唐의 그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隋代에서는 사리를 안치한 地中의 塼室을 壁畵로 장식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는 唐代의 王侯貴族분묘의 玄室을 굉장히 많은 벽화로 장식하는 것으로 그대로 직결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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