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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이상익 (부산교대)
저널정보
한중인문학포럼 한중인문학포럼 발표논문집 2014년 중국 인문학자 초청 인문학포럼 기념논문집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723 - 744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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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이 중국의 유학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발전시켰는가?’ 하는 문제를 ‘文化的 측면’과 ‘哲學的 측면’에서 개관한 글이다.
‘文化的 측면’에서 보자면, 주지하듯이 유학은 中華思想에 입각하고 있다. ‘中華’란 ‘中心地의 燦爛한 文化’ 또는 ‘燦爛한 文化의 中心地’라는 뜻일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땅을 이 세계의 중심지로 인식하고, 그 중심지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하여 ‘中華’로 자처한 것이다. 그렇다면 유학에서 말하는 ‘中華의 精髓’ 즉 ‘斯文의 본질’은 무엇인가? 예부터 유학자들은 ‘人倫文明’ 또는 ‘道義文明’이 그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인륜과 도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핵심인바, 유학에서는 인륜과 도의를 추구하는 ‘사람다운 사람’을 君子라 하고, 인륜과 도의를 외면하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小人이라 했다. 中華란 바로 君子들이 주축이 되는 도의문명의 중심지라는 뜻이다.
한국의 유학자들은 中華思想에 적극 동조하면서 道學을 추구하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흔히 事大와 慕華를 ‘주체성의 상실’이라고 비판하지만, 조선시대 유학자들에게 있어서 事大란 ‘문명적 대국에 대한 자발적 복속’이었으며, 慕華란 ‘중화의 문명국가에 대한 문화적 동류의식의 표현’이었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事大思想은 元·淸·倭 등 ‘야만적 대국’에 대해서는 저항의식으로 표출되었던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들의 慕華思想 역시 중국의 문화를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수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가치판단에 따라 취사선택했던 것이었다.
‘哲學的 측면’에서 보자면, 한국의 유학(性理學)은 朱子學에 대한 연구가 심화되면서 주자학의 이론체계에서 ‘논의가 미진했던 부분’이나 주자의 설명이 ‘전후가 다른 부분’을 규명해가는 과정이었다. 예컨대 四端七情論爭에 대해 살펴보자. 퇴계학파는 四端은 理가 발한 것이고 七情은 氣가 발한 것이라 하여 ‘理氣互發說’을 주장하고, 율곡학파는 四端이나 七情이 모두 氣가 발함에 理가 탄 것이라는 ‘氣發理乘一途論’을 주장하였다. 이들의 대립된 주장의 밑바탕에는 理ㆍ氣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깔려 있다. 퇴계는 ‘理와 氣’를 ‘天理와 人欲’으로 이해하여, 四端은 공정한 天理가 발한 것이므로 理發이며, 七情은 사사로운 人欲(形氣의 욕망)이 발한 것이므로 氣發이라 한 것이다. 그러나 율곡은 ‘理와 氣’를 ‘本과 具’로 이해하여, 四端과 七情이 모두 마음(具)의 지각작용을 통하여 本性(本)이 실현된 것이라는 氣發理乘一途論을 주장한 것이다. 그런데 주자는 ‘理와 氣’를 ‘天理와 人欲’으로 설명한 적도 있고(<答蔡季通>), ‘本과 具’로 설명한 적도 있다(<答黃道夫>). 주자는 ‘本과 具’의 관점에서는 理·氣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였다. 理와 氣는 서로 의존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理·氣의 결합에서, 理는 ‘氣의 운동의 標準(本)’이 되고, 氣는 ‘理를 실현하는 주체’가 된다. 또한 理는 無形無爲한 것이기에, 현실은 有形有爲한 氣가 주도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 세계의 標準(本)은 理이지만, 그 표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氣라는 것이다. 요컨대 本具論의 입장에서는 四端과 七情 모두 ‘理ㆍ氣의 결합’으로 설명될 수밖에 없거니와, 이러한 맥락에서 율곡은 ‘氣發理乘一途論’을 주장했던 것이다. 주자는 理·氣를 ‘天理와 人欲’ 또는 ‘道心과 人心’으로 설명할 때에는 ‘理·氣의 互發’을 인정하였다. <答蔡季通>에 보이는 ‘性이 발한 것’과 ‘氣가 발한 것’이 그것이다. 朱子語類에 보이는 “四端은 理가 발한 것이요, 七情은 氣가 발한 것이다.”라는 말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주자는 이러한 맥락에서는 양자를 ‘공존할 수 없는 勝負의 관계’로 규정하고, 항상 天理가 人欲을 이기게 해야 한다는 當爲論을 제시하였다. 퇴계의 理氣互發論과 理氣勝負論은 여기에 근거하는 것이다. 요컨대 天理人欲論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四端은 理發, 七情은 氣發’이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니, 이것이 퇴계의 ‘理氣互發說’이었다.
주자의 性理說이 사실 일관성이 없고 부분적으로 상충하고 있다면, 상충하는 주장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사람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결국 ‘주자의 다양한 언설들’을 취사선택해가면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목차

1. 緖言
2. 文化的 측면 : 中華思想과 道學의 추구
3. 哲學的 측면 : 性理學의 深化와 分化
4. 結言 : 事大와 慕華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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