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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상구 (위덕대학교)
저널정보
국제언어문학회 국제언어문학 국제언어문학 제27호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83 - 105 (2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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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무첨당 이의윤의 선비로서의 삶과 학문적인 지향점을 살피는 것이 목적이다. 무첨당에 관한 본격적인 논문은 아직 없다. 따라서 이 논문이 무첨당 선생에 대한 연구의 출발점이 된다.
무첨당은 34세의 짧은 생애를 살았다. 그래서 무첨당이 지은 시문(詩文)은 많지 않다. 무첨당의 생애는 성장기, 수학기, 병란기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성장기는 태어나서부터 19세까지 시기로서 성장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의 무첨당은 15세에 인령현에서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곧, 매죽림 안에 작은 집을 짓고 그곳에 공자와 맹자와 정자와 주자의 위판을 만들어 놓고 제사를 지냈다는 이야기에서 공자를 떠올리게 한다. 다음으로 스스로 학문에 뜻을 두고 스승을 찾아 수학을 하던 시기인 21세에서 27세까지의 시기이다. 이때의 무첨당은 심경을 중심으로 ‘敬學’에 몰두 하였으며, 향시에도 합격하였다. 선생은 「혼례질의」라는 예학서(禮學書)를 쓸 만큼 예학에 힘썼으며, 「속원조오잠」을 비롯한 선생이 쓴 詩賦岑 등은 모두 내면을 성찰하는 存心養性에 대해서 적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29세부터 삶을 마감하는 34세까지이다. 이시기는 선생에게 있어 가장 힘든 시기이다. 임진왜란의 와중에 선생의 부친인 응인공이 전염병에 걸려 사망하였으며, 부친의 병을 간호하다 자신도 전염병에 걸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시기이다. 무첨당이 30대의 나이였는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백발이었다고 할 만큼 육체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냈던 시기였다.
무첨당은 이처럼 짧은 여생을 살았지만, 그의 시에는 학문에 대한 열정과 깊이를 오롯이 만날 수 있다. 그의 시들은 대부분 스스로를 경계하고 학문을 권면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으며, 자신의 허물됨을 자각하고 이를 고쳐 영원한 배움의 길로 가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무첨당의 가계와 생애
3. 무첨당의 선비적 삶과 학문적 지향점
4. 맺는말
ABSTRACT
참고문헌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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