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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동락 (대가야박물관)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29호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83 - 12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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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말려초는 우리 역사상 가장 격동의 시기 중 하나였다. 신라의 구질서가 쇠퇴하고, 후삼국을 거치면서 고려라는 새로운 국가체제로 전환되어 나갔다.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진 사회변동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지방사회의 역동성이 어떤 시기보다 강열하게 표출되었다. 이 시기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사회변동을 이끈 주인공을 흔히 豪族이라고 한다. 호족은 새로운 사상조류였던 禪宗과 밀접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글은 청송(진보)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호족인 眞寶城主洪術과 載岩城將軍善弼에 대한 사례 연구이다.
홍술은 聞韶郡의 吏職者(村主)출신으로, 나말려초의 격동기에 眞寶縣의 성주로 성장하였다. 이후 광역의 행정단위였던 의성지역으로 옮겨 그곳을 대표하는 호족이 되었다. 하지만, 경상도 북부 지역을 둘러싼 고려와 후백제의 쟁패과정에서 견훤의 침공으로 전사하고 말았다. 선필은 慶州崔氏 출신으로, 신라에서 파견된 眞安縣의 지방관에서 장군(호족)으로 자립하였다. 그는 경상도 북부지역에 웅거하면서 고려와 신라의 외교 문제에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930년 古昌전투의 승리에 일조하면서 태조로부터 높은 대우를 받았다.
한편, 선필은 선종불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9산선문 중 迦智山門출신의 禪僧인 眞空대사 □運(855~937)을 지원하였다. 특히, □운은 927년에서 929년까지 대략 2~3년 정도 선필의 후원을 받으면서 진안현의 사원에 머물다가, 태조의 초청으로 小伯山寺로 이석했다. □운이 머문 지역은 920년에서 930년대를 전후한 후삼국 쟁패기에 고려?후백제 양국이 치열하게 각축을 벌이던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이 지역에는 태조와 최선필 등의 호족이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이 두 세력의 연결을 매개한 한 인물이 □운이었다. □운과 선필 등의 결연은 나말려초 선종과 호족의 결합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청송 지역의 호족
Ⅲ. 청송 지역의 호족과 선종불교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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