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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한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영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연구 인문연구 제72호
발행연도
2014.12
수록면
289 - 32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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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한(三韓) 이전의 진국과 삼한 때의 진왕을 ‘한’의 성립과 관련하여 살펴본 것이다. 진말(秦末) · 한초(漢初)의 격동기에 중국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동방으로 피난하여, 전국시대 연(燕)·제(齊 )·조(趙) 출신의 사람들은 고조선지역으로, 진(秦) 출신의 사람들은 한(韓)지역으로 이주해왔다. 실제로 진인(秦人)이 한지(韓地)로 들어왔을 당시는 아직 ‘한’이라는 지역명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 고조선의 준왕(準王)이 위만(衛滿)에게 쫓겨나 남쪽으로 와 한왕을 자칭하면서 ‘한’이라는 지역명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한이라는 정치체의 명칭 역시 전국시대 진(秦)의 유이민들이 한의 동쪽에 ‘진한’이라는 정치체로 성장한 것을 계기로 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이라는 지역은 이전에 ‘진(辰)’ 이라는 정치체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진’은 그 중심지가 서방에 위치한 반면에, 그 뒤에 성립한 ‘한’은 그 중심지가 동방에 위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진왕은 마한의 목지국(目支國)을 치소(治所)로 하면서 삼한을 대표하였고, 진한 제국(諸國)이 이에 속하였다. 그리고 진한 제국의 거수(渠帥)는 마한인이 맡았는데, 진한인이 유이민(流移民)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들은 대대로 계승할 수는 있었지만, 마한으로부터 자립할 수는 없었다. 진한 각국의 거수는 새로 즉위할 때마다 진왕의 허가를 얻어야 한 것으로 보인다. 삼한 제국 거수는 위(魏)나 진(晉)으로부터 읍군(邑君) · 귀의후(歸義候) · 중랑장(中郞將) · 도위(都慰) · 백장(伯長)의 호칭을 하사받아 그들 간의 서열화가 이루어졌으며, 그 정점에 진왕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진국과 한국
3. 진왕의 실체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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