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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정민 (한울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82號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61 - 8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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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 묵서백자를 통해 조선 전기 漢陽都城에서 이루어졌던 백자 관리방식의 일면을 확인하고자 함이다. 백자들 중에서도 주로 官物로서 관리되던 그릇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실무자를 명기하는 묵서 방식이 사용되었다. 주로 京中各司들에서 관물로 사용된 백자에 그릇의 출납과 관리주체를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묵서가 사용된 것이다. 조선 전기 관청과 일반의 백자 관리방식을 파악하고자 서울사대문 안에서 이루어진 조선시대 유적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다양한 묵서백자들을 활용하였다.
묵서백자에 담긴 내용들은 개인이 본인의 소유관계를 타인에게 인지시키기 위한 장치라기보다는 묵서된 백자의 출납을 관리했던 사람이 그릇의 효율적인 출납과 재고의 파악을 위해 표시했던 것으로 사료된다. 출토된 묵서백자를 사용된 문자별, 내용별로 구분하여 특징들을 살펴보면, 백자의 귀속과 출납상황이 변화될 소지가 발생했을 때에 주로 묵서가 부가되고 그 주체는 상황에 따라 백자를 직접 관리하는 실무자들을 포함하여 그릇의 출납 과정을 통제했던 官吏일 것이다.
조선 전기 궁궐과 관청에서 음식을 만들고 식사를 거드는 일은 주로 奴婢들이 담당했으며 음식을 담았던 그릇이 사라졌을 경우에 관리책임자는 그 노비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들의 신분과 교육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漢字보다는 한글이나 부호로 원하는 내용을 표시하는 것이 그릇을 관리하는 실무자와 책임자 모두에게 효율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배경이 다수의 한글묵서가 등장하는 원인으로 판단되며 묵서에 담겨있는 이름을 살펴보면 그릇의 관리는 주로 여성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한글로 묵서된 내용을 살펴, 그 등장시기와 활용주체에 대한 접근도 이루어 보았다. 현재까지 출토된 한글 묵서백자 중에서 ‘ㅿ’과 ‘ㅸ’이 초성으로 사용된 유물이 아직 한 점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은 한글이 사용되는 시점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전거한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백자에 나타나는 한글묵서는 ‘ㅿ’과 ‘ㅸ’이 사라지고 난 15세기 말부터 16세기 이후에 주로 시문된 것으로 판단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묵서백자의 종류별 특징과 施文主體의 성격
Ⅲ. 한글묵서백자의 등장시기를 통해 본조선 전기 常燔백자의 조형변화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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