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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하우봉 (전북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8집
발행연도
2014.8
수록면
131 - 170 (40page)
DOI
10.18496/kjhr.2014.08.48.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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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漂海錄』은 1817년(순조 17)일본 九州에 표류한 승려 楓溪 賢正이 1821년에 저술한 표류기이다. 조선시대 승려가 쓴 유일한 일본표류기로서 희귀하며, 일본에서의 견문사항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楓溪 賢正은 광주의 元曉寺에 있다가 1817년 해남 大芚寺의 고승이었 던 玩虎倫佑의 초빙을 받아 千佛像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는 1817년 가을 경상도 경주 기림사에서 천불상을 만들어 대둔사로 돌아오던 중 11월 25일 동래앞바다에서 일본으로 표류해, 1818년 6월 17일 귀국하기까지 일본에서 7개월 간 체류하였다. 그는 귀환 후 1821년 7월 일본 표류시의 체험과 견문을 바탕으로 일본표해록 을 저술하였다.
『일본표해록』은 기본적으로 ‘漂流 日記’의 형식이지만 중간에 견문을 항목별로 정리한 ‘聞見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표류일기뿐 아니라 문견록 부분의 곳곳에 그의 일본인식이 선명하게 피력되어 있다. 체재나 서술형식에는 세련성이 다소 부족하지만 묘사의 사실성과 생동감은 뛰어나며, 견문을 바탕으로 기술한 ‘문견록’은 내용이 충실하다.
풍계대사는 長崎에서 견문한 바를 19개의 항목에 걸쳐 정리하였는데 그의 일본인식의 특징적인 면을 정리해 보면, 첫째, 일본 경제의 번성함을 인정하면서, 국제적인 무역항구 長崎의 富와 번화상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상가와 관청은 물론 개인의 가옥이나 일상생활도 조선보다 훨씬 호화롭다고 보았다. 둘째, 일본인의 기질과 풍속에 대해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단지 대마도의 풍속에 대해서는 아주 부정적이었다. 셋째,일본의 학술과 문화에 대해서는 경제와 달리 낮게 평가하였다. 넷째, 일본인의 조선인식에 대해 그는 일본인들이 매우 우호적이고 우리나라를 존경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만난 소수의 사람들이 보여준 조선문화에 대한 동경과 우호적인 태도를 보고 일반적인 것으로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볼 때 풍계대사의 일본의 풍속에 대한 인식은 수용적이며, 華夷觀에 입각한 日本夷狄觀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통신사행 파견 시 보이는 조선지식인의 문화우월감이나 그 과정상에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국가 간의 경쟁의식 같은 것은 표출되지 않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楓溪 賢正과 『日本漂海錄 』
3. 풍계대사 일행의 표류와 일본에서의 활동
4. 풍계대사의 일본인식
5.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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