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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수인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60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341 - 377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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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의 연기설화는 대체로 문헌을 중심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구전으로 전래되는 경우도 많다. 문헌자료는 대부분 사찰의 사지(寺志) · 사적기(事跡記) · 중수문(重修文) · 비명(碑銘) · 탑기(塔記) 등에 기록되어 전해지는데,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는 64편의 사찰 연기설화가 있다. 연기설화는 사찰의 기원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그것이 전승의 과정을 거치면서 내용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변용됨을 알 수 있다.
본고는 과거 문헌의 형태로 연기설화가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나, 환란에 의해 멸실되고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근래에 이르러 다시 문헌으로 정리되고 있는 칠불사 연기설화의 성립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칠불사의 연기설화는 두 가지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첫째는 사찰의 명칭과 신라왕들에 대한 이야기 전개이다. 칠불사의 원형이 되는 운상원은『삼국사기』에 등장하고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칠불암으로 그 명칭이 변해왔다. 운상원이 칠불암으로 변한 것과 더불어 일곱 부처의 연기설화는 언제 발생한 것일까? 일연선사의 『삼국유사』「가락국기」를 기반으로 한 가락국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만남과 혼인의 과정을 모티브로 삼고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후 칠불사 연기설화는 『삼국유사』등의 영향에 의해 혼재하면서 변용을 보이며 성립하고 있다. 둘째는 칠불사의 아자방을 축조한 연대에 관한 것으로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신라 지마왕(祗摩王) 8년(119)에 담공선사가 만들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 효공왕(孝恭王, 897∼911) 때 금관가야에서 온 담공선사가 아자방을 축조했다는 것이다. 두 설의 연대는 상당한 차이가 나지만 공통점은 담공선사가 축조했다는 점이다.
칠불사의 연기설화는 사찰의 성격변화 양상을 담아내면서 다양한 양태로 변용되어 왔다. 조선시대 조선의 선맥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인물, 즉 청허선사와 부휴선사가 칠불암의 중창에 함께 힘썼으며, 쌍계사와 칠불암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약을 하였다. ‘동국제일선원(東國第一禪院)’이라는 칠불사의 현판이 의미하듯이 조선시대 불교의 선맥은 칠불사를 중심으로 형성 · 전개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기설화를 통해 사찰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그 맥을 찾아 다시금 본래정신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의하여 연기설화는 단지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찰의 살아 있는 정신적 역사로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요약문
Ⅰ. 시작하는 말
Ⅱ. 칠불사 연기의 성립
Ⅲ. 가락국 칠불의 신화
Ⅳ. 칠불사 연기설화의 변용
Ⅴ. 칠불사연기와 조선의 선맥
Ⅵ.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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