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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昌謙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18호
발행연도
2010.4
수록면
33 - 6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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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新金氏’는 金官伽倻 왕족이면서 신라 왕실과 혼인한 金庾信家의 후손을 지칭하는 친족용어이며, 이것은 835년 (흥덕왕 10) 김유신을 興武大王으로 추봉한 결과로 나타났다.
김유신의 흥무대왕 추봉은 785년 원성왕의 즉위와 822년 발생한 金憲昌난의 평정에 공을 세운 김유신 후손들의 현실적인 세력을 배경으로, 오묘제 변화와, 834년 골품제 규정의 반포에서 생긴 김유신계 후손들의 위상문제를 해결하여 일반 김씨 진골귀족과는 다른 특별한 예우를 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였다.
김유신의 대왕 추봉은 본인에 대한 추숭작업과 더불어 그 후손에게도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특혜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김유신의 대왕 추봉으로 그 후손은 신라사회 내에서 一統三韓의 공신 후손일 뿐만 아니라 대왕 후손으로서 예우를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하대 원성왕계가 골품제를 초월한 皇族的 의식과 皇帝的 위상을 추구하면서, 반대로 중대 왕족인 무열왕계를 일반 진골귀족화하면서, 특히 김헌창 난 이후 무열왕계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이들과 동족의식을 갖고 있던 김유신계를 특별히 흥무대왕 후손이라 하여 분리시킨 조치이다. 그 결과 김유신계 후손은 新金氏라 별칭되면서, 일통삼한 직후에 최고를 누렸던 중대의 지위가 점차 위축되어, 신라 정통 김씨와는 차별화되고 그 정치사회적 위상도 낮아져 갔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신김씨`의 실체와 등장시기
Ⅲ. 흥덕왕대 개혁정치와 흥무대왕 추봉
Ⅳ. 김유신의 추숭과 신김씨의 성립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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