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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도형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7집
발행연도
2014.4
수록면
153 - 196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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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12월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직후 일제는 곧바로 동남아지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한인들이 동남아 각 지역에 대규모로 가게 된 것은 태평양전쟁을 전후한 시기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을 당하면서부터였다. 본 연구에서는 태평양전쟁기 최대의 격전지로 일본군에게 최대의 패전을 안겨준 필리핀과 미얀마(버마)지역에 끌려간 한인들이 어떻게 동원되었지, 끌려간 한인들이 무슨 일을 하였는지, 또 전쟁이 끝난 후에 어떻게 귀환하였는지 등을 살펴보았다. 태평양전쟁기 필리핀에서는 15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며, 전쟁의 와중에서 이곳에 강제동원되었던 한인들도 대부분 희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곳이다. 그리고 필리핀전에는 60만 명 이상의 일본군이 파견하여 거의 50만 명이 사망한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필리핀지역에 한인 병사, 노무자, 군속, 위안부 등이 강제적로 끌려갔으나, 어느 정도의 규모로 끌려갔는가 또 얼마나 희생을 당하였는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필리핀지역에 강제적으로 끌려간 한인들의 거의 80% 이상이 희생을 당하고 귀환하지 못하였을 것으로 추측될 따름이다.
또한 버마지역에도 일본군이 1942년 1월 이 지역을 침공하기 시작하여 1945년 8월 15일까지 3년 7개월간 버마전역과 인도의 마니푸르주, 태국북부를 포함한 광대한 지역에서 약 33만 명의 병력을 투입하였으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약 20만 명의 일본군이 전사한 대전장이 되고 말았다.
필리핀지역에 끌려갔던 한인들은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대부분 루손섬 라구나 호반 근처에 있는 문틴루빠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45년 11월부터 순차적으로 귀환하였다. 버마지역에서도 1945년 8월 15일 일본군이 항복함으로써 전쟁이 끝이 났고, 한인 병사들도 연합군에 의해 포로수용소에 들어갔고, 싱가포르로 옮겨진 한인들은 1946년 7월부터 귀환하였다.

목차

1. 머리말
2. 한인 병사의 강제동원 실태
3. 한인의 귀환 실태
4.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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