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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상환 (경상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91집
발행연도
2014.6
수록면
191 - 22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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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3.1운동 이후 통영청년단을 비롯한 청년운동의 발전과정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김기정 징토운동’이 통영지역에서 항일운동으로까지 전화되어가는 과정을 검토해보았다. 1919년 7월 창립된 통영청년단은 지역사회운동과 항일운동의 중심이었다. 통영청년단의 멤버들은 다수의 다른 청년단체에 복수의 멤버십으로 가담하기도 했으며, 시대의 조류와 중앙의 청년단체들의 변화에 부응하면서 발전해 갔다. 즉 1925년에는 통영지역에도 ‘정의단’, ‘거화동맹’, ‘안우회’, ‘사과실탄티’ 같은 사상단체도 만들어 지고, 청년조직들도 청년동맹으로 변화되어 가기도 했던 것이다. 김기정 사건에서도 이들은 함께 ‘민정회’를 출범시켜 한시적인 임무수행을 위해 ‘특별위원회’의 위상을 부여하였다. 각 청년조직들이 이렇게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가면서 개별단체들이 한계를 극복해 나갔다. 김기정 징토운동은 경상남도 도 평의회에서의 김기정의 발언이 단초가 되었고, 통영 사상단체의 효시인 ‘정의단’에서 활동한 김원석의 징토문 살포로 촉발되었다. 게다가 경찰 출신자들의 모임이자 친일 단체인 ‘삼구회’라는 친일조직에 대한 통영민들의 반감으로 항일의식은 더욱 고취되었다. 김원석의 전격구속에 이은 3월 25일의 보고대회가 진행되어 김기정에 대한 징토운동운동이 확산되어가는 시점에 김기정이 관선 도 평의원으로 재임 된다든지, 5월 9일 앞의 보고대회 집행위원 11인을 추가 구속함으로써 사건은 증폭되었다. 3월 15일부터 시작된 이 운동은 동년 5월 15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도합 33인이 구속되고 김기정이 공직에서 사퇴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것은 ‘통영청년단’을 비롯한 지역의 청년조직이었다. 이 운동이 두 달 동안 지속되어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통영지역민의 일치단결된 항일의식과 민족반역자에 대한 분노였다. 통영지역의 김기정 징토운동은 지역을 넘어 전국으로, 해외로까지 알려져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 가운데 내선일체에 대한 허구를 공격하고, 부일협력자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통영청년단의 탄생과 청년단체의 발전
Ⅲ. 김기정 징토운동의 전개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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