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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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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민형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학회 미술사학연구(구 고고미술) 美術史學硏究 第278號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163 - 194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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端應은 경상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던 彫刻僧이다. 그는 1656년에 조각승無染이 주도한 완주 송광사 나한전 佛事에 보조화원으로 참여하며 불상 제작 기술을 익혔다. 이후 단응은 1684년에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을 제작하였다. 기년명 불상은 제천 정방사 목조관음보살좌상(1689), 안동 봉황사 석가여래삼불좌상(1692), 하동 쌍계사 사천왕상(1705) 등이 남아있다.
단응의 계보는 조각승 卓密, 琢璘, 그리고 正幸 등으로 이어진다. 탁밀이 1687년에 제작한 영월 보덕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에서는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의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탁린은 1716년에 양구 심곡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하여 단응의 계보를 잇고 있다. 정행은 1730년에 제천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736년에 제천 백련사의 아미타여래좌상을 제작하였다.
단응의 불상은 신체비례, 얼굴 표현, 배와 다리의 옷주름, 보살상의 장식성 등에서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다. 단응의 불상은 얼굴이 작고 허리가 긴 편이다. 불상은 평면적인 얼굴에 매부리코이며 배에서 늘어지는 W형의 옷주름과 하반신을 덮은 대의가 좌우로 갈라져 균일하게 펼쳐지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보살상은 화려한 보관의 장식과 지물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불상 양식은 무염이 1656년에 제작한 완주 송광사 나한전의 불상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매부리코, 이중의 턱 표현, 다리를 덮고 균일하게 펼쳐지는 둥근 대의자락이 공통적인 특징이다. 무염의 불상은 눈두덩과 볼, 그리고 신체의 양감이 두드러진다. 이에 비해 단응의 불상은 얼굴이 작고 길쭉한 신체에 양감이 줄어들어 서로 다른 조형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응은 전라도 출신으로 17세기 후반에 경상북도 지역으로 진출하게 된다. 단응이 출신지역을 벗어나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昭影堂 神鏡大師과 宗現의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신경과 종현의 활동지역은 경상북도 지역이 주요 거점지였으며 그 외 강원도, 충청북도 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이 지역은 단응과 그의 영향을 받은 조각승의 활동 지역과 일치하여 실제적인 후원자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경상북도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대승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최근 1675년에 조성된 것이 밝혀지면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의 선행된 예임이 확인되었다. 대승사 상은 宗現이 證明을 맡았고, 조각 수법에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유사하다. 이 밖에도 단응 계열로 추정되는 다른 작품으로는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있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의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이를 제작하기를 발원하였던 신경과 종현의 역할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화를 불상으로 번안할 수 있었던 단응의 역량으로 인해 제작될 수 있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端應 불상의 특징과 영향
Ⅲ. 端應의 활동배경과 새로운 경향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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