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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회 사학연구 사학연구 제104호
발행연도
2011.12
수록면
1 - 35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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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전반기는 金의 건국, 遼의 멸망, 北宋의 南宋으로의 교체 등으로 동아시아가 혼란에 빠진 시기였고, 이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외교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려의 외교에 대한 고찰의 일환으로, 당시 고려가 新生國인 금과의 관계를 정립해나가는 과정을 국제정세와의 관련성 속에서 살펴보았다.
고려는 1126년(仁宗4) 4월에 金에 사신을 보내 稱臣上表함으로써 금과 공식적으로 외교를 맺었다. 금은 睿宗代후반부터 고려에 국교를 요구하였는데, 고려는 回報하지 않는 등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금이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성장하자 태도를 점차 바꾸었다. 즉 수교 반대에서 동등한 지위를 기반으로 한 수교 찬성으로, 그리고 상하관계를 인정하는 입장으로 변화한 것이다.
고려가 금에 稱臣上表한 이후에 양국은 誓表를 놓고 외교문제를 겪었다. 이는 금이 서표라는 국제문서의 형식에 민감하게 반응해 문제를 야기한 측면이 있지만, 결국 고려가 금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려의 이러한 태도의 원인은 당시 송의 援兵假道요구를 거절함으로써 송으로부터 외교적 압박을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서표문제는 강대국으로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금과, 금?송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고려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129년(인종 7)의 서표제출 이후 고려는 금과 안정적인 외교를 통해 평화관계를 지속하였고, 남송과는 점점 소원해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1142년(인종 20) 인종은 금으로부터 冊封을 받았다. 금은 1141년 紹興和議로 송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확정지었고 熙宗에 대한 尊號加上으로 그 위엄을 내외에 전달한 후에 이를 기념하는 방식으로 고려 인종을 책봉한 것이다. 이로써 안정된 국제정세만큼이나 고려와 금의 관계 역시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이처럼 12세기 전반기, 고려는 복잡다단한 국제정세에 적절히 대응하며 유연한 외교정책으로 금과의 관계를 정립해나간 결과, 금을 정점으로 한 국제질서가 성립되던 시기에 고려와 금의 관계 역시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이후 내내 우호관계를 지속하게 되는 바탕을 마련하였다.

목차

요약
머리말
Ⅰ. 금의 흥기와 고려의 대금외교노선 변화
Ⅱ. 송의 고려 압박과 고려-금 서표문제
Ⅲ. 금 중심의 국제질서 수립과 인종 책봉
맺음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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