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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야기 시게루 (오사카 역사박물관)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로컬리티 인문학 로컬리티 인문학 제11호
발행연도
2014.4
수록면
235 - 249 (15page)
DOI
10.15299/tjl.2014.04.1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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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도시 大坂은 1583년 豊臣秀吉의 大坂 축성과 城下町의 건설에서 시작되었다. 1598년 大坂 성의 세 번째 성곽[ 三の丸] 축조와 선착장의 개발,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大坂夏の陣]에 의한 城下町 소실 및 그 이후 堀川의 開削과 마을의 개발이 ?期가 되어, 1630년 대 중반에는 도시개발이 거의 종료되었다고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구체적인 개발의 내용에 대해서는 발굴조사의 성과를 제외하고 구체적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大坂의 남쪽에 만들어졌던 道頓堀川은 1612년에 大坂 축성 이전부터 있던 주변도시의 유력자들이 開削을 시작으로 오사카 여름 전투 후 1615년 말에 완성되었다. 그후 개발 모습은 1650년대 이후의 사료에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1620~50년代도 포함하여 17세기 道頓堀에 대한 사료가 새롭게 발견되어 그 과정을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
1620년대는 집이 세워지지 않은 町屋敷가 눈에 띄고, 그것들의 屋敷地는 도시 지역으로는 간주되지 않고 농지에 부과되는 年貢을 상납해야하는 年貢地로 여겼다. 그러나 1640년대에는 年貢地가 다시 町屋敷로서 개발되게 되었다. 특히 중심부의 재개발지에서는 芝居小屋가 세워지게 되어 1650년대 이후 道頓堀는 芝居町로서 번영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외에도 새로운 사료에서는 지금까지 江?시대 전기의 大坂 町의 주요한 사례로서 다루어져 왔던 道頓堀에 접한 菊屋町 연구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그림 등도 발견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사료에서도 道頓堀의 개발자의 한명인 平野次?兵衛가 개발 한 新平野町에 대해서도 平野와 도읍의 대상인 那波屋이 거의 반씩 대지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새롭게 개발된 사료에 의해서 17세기의 大坂 도시 사회의 개발에 대해서 지역, 개발자나 토지소유자, 개발단계의 각각을 상세히 검토해 갈 소지가 완성된 것이고, 이후 그것들의 새로운 연구를 이끌 필요가 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道頓堀의 개발 - 기존의 연구
3. 새롭게 발견된 사료로 본 道頓堀의 개발
4. 주변지역의 상황
5. 결론 - 개발의 유형과 단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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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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