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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명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46집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171 - 218 (4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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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도산 안창호가 서대문형무에서 투옥생활을 했던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1932년 상해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되어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며 출옥한 후 1937년 또다시 서대문형무소에 재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나 서거하기까지의 행
적을 추적하였다. 이와 동시에 두 차례 형무소에 수감되어 경험했던 형무소 생활의 실태과 당시 형무소의 行刑 실태를 아울러 살펴보았다.
도산은 일생을 통해 4차례 감옥에 투옥되었다. 첫 번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거가 일어났을 때, 평양에서 압송되어 영등포 감옥에 투옥되었다. 두 번째는 1927년 만주 길림성 대동문 밖에 위치한 대동공사에서 강연하던 도중 중국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길림 경찰청 구치소에 20여일 동안 수감되었다. 세 번째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거가 일어난 날, 체포되어 국내에서 4년 징역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후 이송되어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네 번째는 1937년 6월, ‘동우회사건’으로 다시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일제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도산을 국내로 압송해 형무소 울타리 안에 가두고 감시와 억압을 가하여 그의 민족적 영향력을 소멸시켜 버리고자 하였다. 온갖 분열책과 전향 공작을 전개하고 감옥에 투옥 시켰지만 그의 존재는 민족 통합과 결집의 상징으로 여전히 빛을 발하였
다. 도산은 경찰서와 법원 구치감과 형무소에서 투옥생활 중에 가족과 친지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투옥생활 동안 그의 건강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중국 침략을 준비하며 황민화에 박차를 가하고 일체의 민족운동을 박멸하고자했던 일제는 또다시 도산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하였다. 이제 도산은 더 이상의 옥중 수난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도산의 투옥 생활 기록에서 당시 刑行의 실태를 살펴 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형무소는 공권력의 서슬이 가장 시퍼랬던 곳이다. 그러나 형무소 내에서 한국민의 민족주의는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애환과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목차

1. 머리말
2. 도산의 국내 압송
3. 1차 서대문형무소 수감
4. 대전형무소 이송
5. 2차 서대문형무소 수감
6.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영문요약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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