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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보혜 (서울역사박물관)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72
발행연도
2013.12
수록면
301 - 33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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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권4, 의해5 ‘현유가 해화엄’조에서는 태현을 유가종의 조사로 표현하며, 경덕왕 12년에 국왕의 부름을 받고 기우제를 지낸 사실을 전한다. 이때 태현이 지낸 기우제는 경덕왕의 왕권강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며, 그 결과 유가종을 개창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태현의 유식사상은 그의 저술을 통해 살필 수 있는데, 상종과 성종을 아우르는 사상적 경향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성유식론학기』와 『대승기신론내의약탐기』에서도 찾아지는 그의 융섭적 유식사상은 그의 실천신앙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이해된다. 태현은 중국 법상종 승려들과는 달리 미륵신앙과 함께 아미타신앙을 병행하였다. 아미타신앙을 포용하는 것은 신라 유식승려들의 일반적 성향으로, 『법화경』에 대한 공통된 관심에서도 찾아질 수 있다.
태현이 활동한 경덕왕대는 아미타신앙이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전 시기와 달리 집단 수행이 나타나면서 체계적으로 심화되었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불국토 사상과 연결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당시 아미타신앙이 내세적 성격에서 현실적 성격으로 변했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성격이 변한 것은 경덕왕대 자연 재해와 기근으로 인하여 민중사회가 피폐해지면서 현실에서 극락정토를 건설하기를 바라는 경향이 짙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태현이 적극적으로 아미타신앙을 수용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렇듯 태현은 아미타신앙을 수용하면서 미륵신앙과 아미타신앙을 병행하는 신앙구조를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유가종의 신앙 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유가종과 관련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백월산 남사에도 이와 같은 신앙 구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편 경덕왕대 성립한 유가종은 이후 신라 하대에 들어서면 선종의 발달로 인해 크게 발달하지 못하고 그 흐름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고려 유가업의 중심사찰인 현화사에서 미륵신앙과 아미타신앙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 태현의 신앙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신앙 전통이 고려 유가업까지 전해진다는 사실을 통해 태현의 유가종은 끊이지 않고 고려까지 전승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景德王代 太賢의 瑜伽宗 성립
Ⅲ. 太賢의 唯識思想과 信仰的 특성
Ⅳ. 太賢 阿彌陀信仰의 사회적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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