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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관련 소수파 의견 : 해럴드 헨더슨(Harold H. Hender son)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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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nority” Opinion of the Shinto Shrine Controversy: The Case of Harold H. Henderson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류대영 (한동대)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9호 KCI등재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145 - 180 (36page)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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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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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결과
신사참배 관련 소수파 의견 : 해럴드 헨더슨(Harold H. Hender son)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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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참배 문제는 그 동안 민족수난사의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따라서 그동안 신사참배에 관한 “소수파” 의견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연구는 해럴드 헨더슨(Harold H. Henderson)을 중심으로 소수파의 견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대구 계성학교 교장이었던 헨더슨은 신사참배를 둘러싼 선교부 내의 갈등이 벌어졌을 때, 일본인들과 타협하면서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시종일관 주장하며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또한 그는 모든 형태의 신사참배를 금하고 결국 교육사업 철수까지 결정한 한국선교부 집행부를 맹렬하게 비판하며, 끝까지 그들의 지시를 거부하며 계성학교 교장 및 설립자 직을 유지했다. 이에따라 “다수파”를 이끌던 한국선교부 집행부는 선교본부에 요구하여 그로 하여금 교장 및 설립자 직에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신사참배 문제는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적인 문제이기도 했지만 선교사들에게는 일차적으로 신학적인 문제였다. 따라서 신사참배를 둘러싼 갈등은 “자유주의적 소수파”와 “근본주의적 다수파” 사이의 싸움이었으며, 미국 북장로교에서 벌어진 근본주의-근대주의 논쟁의 연장선에 있었다. 북장로교 한국선교부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보수적 다수파의 지배를 받았고, 그에 따라 신사참배 문제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신사참배를 요구받던 일본 및 일본의 식민지 전체로 볼 때 한국선교부의 다수파는 얼마 되지 않는 소수파에 불과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해럴드 헨더슨 : 배경 및 약력
Ⅲ. 헨더슨의 교육 목표와 계성학교
Ⅳ. 신사참배 문제에 대한 견해와 행동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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