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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유경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8집
발행연도
2013.9
수록면
293 - 32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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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19세기 중엽 미네소타 주에 뉴엄을 건설한 독일 이주민들의 이중적 정체성을 탐구한다. 뉴엄은 독일 이주민들이 중서부에 개척했던 정착지 가운데 매우 흥미롭고 독특한 곳으로, 그 주역은 농민과 노동자 및 ‘실패한’ 독일 1848년 혁명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이른바 ‘48년 사람들’이었다. 이 도시의 독일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한 버팀목은 체조협회와 ‘헤르만의 아들들’ 두 단체로서, 양자의 인적 구성은 상당 부분 중복성을 보인다. 후자는 서기 9년 로마의 침략으로부터 게르마니아를 구원했다고 전해지는 민족 영웅의 이름을 딴 조직으로, 그들이 독일 데트몰트의 헤르만 기념비를 모방하여 1897년 뉴엄에 건설한 또 다른 헤르만 기념비는 미국의 전 독일인들을 위한 민족적 상징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독일과 미국의 관계사에서 1차 세계대전은 독일 이주민들의 강제동화를 야기한 분기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뉴엄의 초창기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화는 1914년 혹은 1917년보다 훨씬 앞서서 진행되었다. 그 까닭은 뉴엄을 건설한 체조협회 회원들이 대부분 1848년 혁명의 대의에 공감했던 자유주의자들로서, 자연스럽게 미국적 신조인 자유와 공화주의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체조협회는 독일 정체성의 지주인 동시에 미국화의 기구였다고 볼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들어가는 글
Ⅱ. 유럽의 한가운데서 미국의 한가운데로: 뉴엄의 탄생
Ⅲ. 독일 정체성의 지주 : 체조협회와 ‘헤르만의 아들들’
Ⅳ. 이중의 정체성 : 다코타 전쟁 기념비와 헤르만 기념비
Ⅴ. 나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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