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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희 (한국학중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9집
발행연도
2013.4
수록면
260 - 283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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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세기 후반의 遊記인 『峽遊日記』를 소개하고, 漢文散文으로서의 특징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협유일기』는 구한말의 중앙 관료였던 鄭敬源(1851~1898)이 1877년에 스승 李象秀(1820~1882)를 모시고 충청북도 西郡(丹陽, 淸風, 堤川, 永春)과 寧越을 유람하고 지은 遊記 2편을 실은 책이다. 여기에는 단형 유기 「峽遊記」와 일기체 유기 「東遊日記」가 실려 있고, 말미에는 李象秀의 발문과 崔秉善의 「東遊錄序」가 붙어 있다. 2편의 유기에는 이상수가 정경원의 작문지도를 위해 쓴 批注와 批點이 남아 있다.
『협유일기』의 글쓰기 방식은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遊記의 筆記雜錄化 방식이다. 이것은 18세기 遊記 창작에서 성행했던 글쓰기 방식으로, 작자는 유기 속에 유람 도중의 다양한 견문과 생각을 자유롭게 서술해 넣는다. 그리고 각각의 화제들을 분리된 형태로 두는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정경원은 유람지에서 見聞한 지리의 역사, 지질의 특성, 역사 유적의 유래 설화, 지명 유래 등의 화제를 기록하였다. 그 예가 많지 않지만, 필기잡록화 방식의 글쓰기가 19세기 후반가지도 영향을 미쳤음이 확인된다.
두 번째 주목해야 할 점은 전대 문장의 수용이다. 정경원은 전대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재조합해서 문장을 구성하는 방식을 자주 사용하였다. 표절로 보이는 이 방식을 이상수는 그대로 용인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19세기 전반의 관료문인 洪敬謨에게서도 흔히 나타나는 방식으로, 당시의 글쓰기 방식의 관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보건대 베껴 쓰기는 19세기를 아우르는 글쓰기 관행이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협유일기』의 인용 범위에는 袁宏道의 유기가 많이 들어있는데, 이를 통해 원굉도의 유기가 19세기 후반까지 계속해서 읽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자료 개관과 유람의 경위
Ⅲ.『협유일기』의 글쓰기 방식
Ⅳ.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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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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