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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혜영 (전남대)
저널정보
한국서양고전학회 서양고전학연구 서양고전학연구 제45권
발행연도
2011.9
수록면
67 - 9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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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클레스의「트라키스 여인들」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논쟁은 상연시기 및 극에서 보이는 헤라클레스의 초라한 모습, 특히 신격화와는 거리가 먼 헤라클레스의 비참한 죽음과 관련된 것이다.. 필자는 기원전 426년 스파르타의 트라키스-헤라클레이아 식민도시의 창설을 이 작품의 상연 배경으로 주목하면서, 위의 두 가지 논쟁점을 해결하려하였다. 비극의 제목인 ?트라키스 여인들?에서도 드러나듯이, 주 무대는 에우보이아의 트라키스에 있는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의 집이며, 합창단도 트라키스 여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이 한창이던 기원전 426년,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가까운 트라키스에 전략적 목적으로 식민도시의 창설을 주도하고, 도시 이름도 스파르타 왕가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던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따 헤라클레이아로 명명하였다. 당시 스파르타와 치열하게 싸우던 아테네는 가까운 곳에 親 스파르타 식민도시가 창설되는것을 지켜보면서, 앞으로 이곳이 反 아테네 전초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크게 우려하였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의 전쟁 관행에 비추어, 아테네로서는 이 도시의 창설을 공격할 필요성, 특히 트라키스의 새로운 이름이자, 스파르타의 조상신이 된 헤라클레스를 폄하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전 그리스적 영웅으로 숭배되었지만, 근원적으로는 도리스 족 및 스파르타의 시조 영웅이라는 점이 누구에게나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작품 곳곳, 특히 마지막 장면에 헤라클레스 가문의 비극성과 헤라클레스의 非 영웅성이 드러나는 이유는 이와 관련하여 볼 때 쉽게 이해가 된다.

목차

요약문
1. 줄거리 및 헤라클레스의 신성과 관련한 논쟁
2. 저작 시기 논쟁
3.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헤라클레이아시의 창설
4. 헤라클레스의 탈 영웅화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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