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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성환 (경기도박물관)
저널정보
한국국학진흥원 국학연구 국학연구 제22집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407 - 437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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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문은 일찍이 역학에 열중하여 40세인 1697년 『역학도해』6권을 저술하고 30년 후 그 내용을 축약한 형태로 간행했다. 그의 천문학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전통적인 이해와 달리 ‘지구’와 ‘지전地轉’ 개념의 새로운 것이다. 특히 ‘지전’의 개념은 당시 서양의 천문관과도 차이를 지니는 것이었다.
김석문은 ‘대명유민大明遺民’임을 자처하며 서학에 부정적이던 노론 계열인 허격許格의 문인이다. 이런 스승의 성향은 김석문에게 일정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즉 김석문의 서양역법에 대한 태도는 도학적인 분위기에서도 서양학문에 비교적 개방적이었던 가학 전통과 서학을 배척했던 스승의 학문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서양학문을 의리역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였던 상수역학자들이 천문학의 지식에 기초하여 『주역』을 더욱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당시 학풍과도 관련된 것이었다.
18세기 후반 천문과 역법에서 큰 성과를 보인 황윤석은 김석문의 역학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 성과는 널리 공유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선배인 김석문에게 ‘삼대환부공설三大丸浮空說’이 있었고, 홍대용이 이를 자유로이 부연하였다”는 박지원의 언급을 주목할 수 있다. 홍대용의 우주론이 김석문의 그것을 수용한 것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역학도해』는 이후 몇 차례의 간행 노력이 있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안정복이 간행본을 정초하여 검토한 사실이 확인된다. 이 자료가 남인 계열의 일부 실학자들에게 관심 대상이었음을 의미한다. 가전되던 이 자료는 잘 보관되지는 못했다. 이에 포천의 학인이었던 성효기에게 전해졌고, 성대중에 의해 봉선사에 보관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 저자를 성운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하였다.
『역학도해』에서의 우주론은 지구설을 바탕으로 자전론과 공전론을 함께 전개한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의 학문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천문관과 서양천문학의 비판적인 수용과 발전으로 가능했다. 이 같은 그의 학문은 이후 낙론 계열의 학인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홍대용?황윤석의 우주론으로 확대 발전하는데 토대가 되었다. 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안정복 등과 같은 일부 남인 계열의 실학자들에게도 관심을 받았다. 그의 우주론은 실학자들이 동서양의 천문학을 적극 수용하여 본격적인 우주론을 전개하는데 출발점이 되었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김석문의 가계와 학풍
3. 『역학도해』와 조선후기의 역학
4. 『역학도해』의 전승 과정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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