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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金相鉉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문화사학회 문화사학 文化史學 第39號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57 - 66 (1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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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覺國師 千熙(1307-1376)는 화엄종 승려로 고려 공민왕 때 국사를 지낸 고승이다. 고려시대의 화엄종은 대표적인 4대 종파에 속했지만, 고려 후기에는 그 종세가 타 종파에 비해 약한 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화엄종의 천희가 국사에 책봉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천희의 禪敎兼修, 조계종 懶翁과의 갈등, 그리고 부석사의 중수 등을 살펴서 천희의 불교사적 위상을 고찰하고자 했다.
화엄종 승려 천희는 원나라의 유학을 통해 선법을 익히기도 함으로서 禪敎을 겸수했다. 공민왕16년(에 국사에 책봉된 그는 고려후기 국사에 책봉된 유일한 화엄종 승려였다. 아마 화엄종 출신 신돈의 추천이나 도움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의 선교겸수 또한 그가 국사에 책봉되는 한 배경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계종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당시에 화엄종 출신의 국사 천희의 활동은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공민왕 19년에 실시된 功夫選을 계기로 촉발된 나옹과의 갈등으로 천희는 개경을 떠나게 되었다. 천희는 부석사에 주석하게 된 공민왕 21년부터 몇 년 동안 부석사 중수 불사에 힘을 쏟아 복구를 완성했다. 화엄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던 천희의 희망이 부석사 중수 불사로 표출된 것이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千熙의 禪敎兼修
Ⅲ. 千熙와 懶翁의 갈등
Ⅳ. 千熙의 浮石寺 重修
Ⅴ. 맺는말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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