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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정 (용인대학교)
저널정보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연구 한국학연구 제45집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159 - 182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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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 사옹은 전국에 산재한 여러 가마터에서 내용자기의 제작을 監督하고 收取해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사옹은 禑王代(1374~ 1388) 관직 남발로 설치된 첨설직이면서 民財를 사적으로 갈취하는 등의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다. 개혁 儒臣이었던 조준은 당시 사선서와 직무가 중복
되는 사옹의 혁파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상당 기간 동안 제 기능을 못했던 사선서에서 內用瓷器의 監造 및 收取를 담당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수백 명의 차비가 소속된 사옹 조직을 일시에 혁파할 수 없었다.
조선초에 사옹은 1405년에 사옹방으로 吏曹에 편제되었고, 적어도 1417년까지 궐내 사용되는 자기의 수취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옹방은 왕실의 주요 구성원이 머무는 대전, 중궁전, 세자전에 설치되어 內膳 供上을 담당하였지만 주요 구성원이 내시나 별좌로 이루어진 품계
가 없는 기구였다. 그러나 왕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친왕실 성향의 인물이 사옹제조에 임명되는 등 왕실 직속 기구의 성격을 유지하였다. 또한 사옹방에 器皿만 담당하는 사람이 배치되었다는 점이나 그릇을 분별하여 사용해야 하는 등 왕실용 자기와 관련된 사옹방의 역할을 볼 수
있다. 결국 정식 관사였던 사선서는 폐지되고, 직급이 없는 왕실 직속 기구였던 사옹방이 1467년에 정3품의 정식 행정 관사인 사옹원로 개칭되고,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업무까지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高麗末 司饔의 성격과 內用瓷器
3. 朝鮮初 司饔房으로의 移行과 역할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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