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은자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가천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아시아문화연구 아시아문화연구 제29집
발행연도
2013.3
수록면
301 - 326 (2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글은 기억의 정치 개념을 활용하여 광주(廣州. 광저우)의 개항 기억을, 공식 기억으로서 아편전쟁, 또 다른 기억으로서 광동 13행(廣東 13行)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광주는 아편전쟁 기간 내내 중요한 지역이었다. 영국의 전쟁 도발 구실을 제공한 임칙서의 금연 운동이 광주에서 실행되었고, 금연 운동 전후에서 전쟁 폭발까지의 갖가지 중?영 분규와 충돌이 주로 광주에 집중되었다. 여기서 임칙서의 금연 운동, 인민의 항영(抗英) 투쟁은 기억해야 할 사건이고 그 공간은 기억해야 할 장소였다. 이는 광주 삼원리(三元里)의 인민항영투쟁기념관, 호문(虎門)의 아편전쟁기념관 등 기념 공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나 실제로, 근대 반제 반침략 애국운동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삼원리 사건은 사실과 전설이 구분되지 않은 채 신화화되었다. 전쟁 이전에는 아편 밀매에 종사하고, 전쟁 기간에는 영국측에 협력하여 이익을 구하는 ‘한간’(漢奸. trader)은 도처에 존재하였다.
원래 광주의 개항 기억에서 광동 13행의 기억은 주변화되거나 망각되었다. 13행에 대한 재평가는 13행과 아편전쟁의 관계를 재검토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13행에 대한 재평가 역시 아편전쟁에 대한 공식 평가를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13행은 서양인과 교류하고 아편을 밀매한 혐의를 받았던 ‘한간’에서, 서양의 장기를 배워 항전에 적극 참여한 ‘애국자’로 극적인 변모를 하였다.
광동 13행은 영남 문화의 중상성(重商性)을 대표한다. 이와 관련한 역사 유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13행 유적 개발은 대외무역의 중심지로서 광주의 위상, 로컬리티를 강화하는 데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광동 상인 정신은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중국 문명의 글로벌화에 더 없이 좋은 소재이다. 이런 점에서 13행 유적은 광주의 로컬리티 뿐 아니라 중국의 내셔널리티 강화에 더 없이 훌륭한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광동 13행이 또 다른 개항 기억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연유는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서론
Ⅱ. 개항과 광주(廣州)
Ⅲ. 국가의 공식 기억─아편전쟁
Ⅳ. 또 다른 개항 기억─광동 13행(廣東 13行)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 초록>
<Abstract>

참고문헌 (3)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4-900-003052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