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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덕연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9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233 - 280 (5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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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서양화단은 작가들의 예술세계와 정신성으로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활동한 초기 선각자들에 의해 개화되고 민족주의 정신을 이식 받아 폭넓은 자양분을 쌓아옴으로써 오랜 기간 구상미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근대미술의 시작이 초기 서양화를 전공한 일본 유학파 화가들의 국내 활동과 최초의 전시가 서울이나 평양 등지에서 열렸던 것과 달리 대구에서 본격적인 유학파 화가가 나오기 이전인 1920년대 초반 수채화 작품전으로 시작된다. 특히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 이상정과 이여성 등 선각자들에 의해 처음 서양화가 제작되고 발표된 것이다. 대구화단의 형성은 서동진의 ‘대구미술사’를 통해 이미 화단이라는 기틀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대구지역에 처음 서양미술이 도입되던 1920년대 초에서 30년대까지 서양화단의 성장과정은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뚜렷한 발전을 이루었다. 대구의 문예운동단체인 ‘영과회’, 조선향토색론에 입각하여 예술의 순수성과 민족적 정서를 미술에 반영코자 한 ‘향토회’를 통해 전개된다. 민족주의적 작가의식과 이념을 표방한 이들 단체는 한국근대미술사상 가장 주목받는 사건이었다. 이후 대구미술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전환기를 맞으면서 대구구상미술이 제자리를 확보해 나가게 된다.
구상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한국미술계에서 사용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로 구상미술에 대한 논의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대구 구상화단은 해방 이후 노동 같은 붐을 일으켰던 추상미술과 현대미술의 열기가 지나간 후, 1969년 구상미술단체인 ‘이상회’ 창설에 대표되듯이 1970년대에 들어서고부터이다. 그러므로 1970년 80년대는 구상과 비구상미술이 조화와 경쟁을 이루면서 대구화단을 지배하는 시기이다. 또한 이 시기에 다양한 구상미술 단체들이 결성되면서 대구 구상화단이라는 큰 틀을 형성하면서 전국적인 위상을 다져나가게 된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서양화의 도입과 대구 근대미술
3. 지역화단의 형성과 사실주의 화풍
4. 대구 구상화단의 성립과 전환기
5. 대구 구상화단의 특색과 전개
6. 나오는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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