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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홍원기 (대구교육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9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143 - 186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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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조소의 역사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으로 계승된 바, 특히 불교미술과 공예, 건축, 왕릉 조성 등과 관련을 가지면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시기 조소 작품은 절대 다수가 석가모니, 보살, 나한상 등 종교적 인물의 주제로 한 불상조각이 주류를 이루며, 이는 엄격한 양식에 따라 제작됨으로서 신앙의 대상으로서 종교적인 성스러움과 신비성을 갖추고 있다. 그 후 한국 현대 조소의 도입은 1900년 서울의 공예미술학교 창설을 위해 정부에 의해 초빙된 후 1905년까지 서울에 머물렀던 프랑스 출신의 도자기 장식미술가 헤미옹(Remion, 19-20c)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국인에 의한 현대조소의 도입은 1925년 동경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선구자 김복진(1901-1940)과 그의 후배 김두일, 문석오, 김경승, 윤승욱, 김종영, 윤효중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 시기 이들은 주로 조선미전을 통해 두상, 흉상, 입상, 좌상 등 사실주의에 입각한 구성계열의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특히 양식적 측면에서는 우리나라 전통 조각의 미를 수용하면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조각가 로댕과 부르델의 조형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대구 조소계의 활동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경주에서 활동하던 김만술의 국전출품과, 1957년 5월 불상조각과 인체 소조 작품으로 대구에서 역사적인 최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이어서 대구 조각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는 홍성문은 1954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김천에서 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63년에는 홍성문이 대구교대 교수로 부임하고, 1967년에는 박병영이 대구교대, 1968년에는 남철이 계명대에 자리 잡으면서, 대구 조소계의 기반이 잡혀간다. 1960, 70년대에는 홍성문, 남철, 박병영, 김익수, 정은기, 송기석, 변유복, 최태화, 신현오, 황태갑 등이 63美展, 경북미협전, 국전과 이상회전 등 각종 단체전을 통해 인체를 주제로 한 구상적인 목조와 석조, 추상적인 철조, 목조 등을 발표하면서 조소는 서양화와 함께 대구화단의 중심적인 예술 영역으로 정착되고, 이들은 서울 조소계에서도 활동을 전개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는 본격적인 조각가들의 모임인 경북조각회가 창립(1980)되면서 대구 조소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목차

1. 서론
2. 한국 1세대 조각가들의 작품 활동상
3. 대구 조소의 상황과 전개
4. 대구 조소의 특성
5. 결론
참고문헌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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