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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나나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한국학논집 한국학논집 제49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59 - 96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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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시기 대구문인화단大邱文人畵壇의 개조開祖 석재 석병오는 《교남시서화연구회嶠南詩書畵硏究會》(1922년)을 창설하여 대구를 중심으로 문인회의 기반을 세웠다. 그는 글씨와 사군자화를 주로 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묵죽화가 뛰어났다. 서병오는 당시 서울 중앙의 전통화단이 화려한 색채나 세부적 묘사에 치중하는 일본적 화풍으로 흐르는 것을 배격하고 전통 수묵 사군자화를 통해 일제 강점 하에 군자정신·민족정신을 심어주었다.
서병오는 이정(李霆, 1541-1626) → 유덕장(柳德章, 1675-1756) → 신위(申緯, 1769-1847)로 이어지는 전통 묵죽화를 계승하면서도 10여 년간 중국 주유를 통해 ‘해상화파’의 새로운 근대적 양식을 수용하여 농묵에 의거한 호방하고 활달함이 넘치는 ‘석재풍’의 묵죽화를 창출했다. 이러한 그의 ‘석재풍’ 문인화는 《교남시서화연구회》를 통해 대구·경북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확장되었으며, 세자 배효원·김진만·서동균 등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대구를 중심으로 하는 ‘영남문인화맥’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석재 서병오가 대구미술사에 끼친 영향은 실로 크다. 따라서 ‘서병오와 근대영남문인화 형성’에 관한 연구는 곧 대구 미술사의 위상을 확립하는 일이기도 하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근대의 문인화
3. 서병오의 묵죽화
4. 나가는 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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