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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전호태 (울산대학교)
저널정보
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85집
발행연도
2012.12
수록면
1 - 47 (4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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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크게 4개의 작업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작업층은 화면 구성 방식과 표현 기법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한국 선사 및 고대예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대상의 특징을 간결하게 표현해 내는 전통과 닿아 있다.
반구대암각화는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청동기시대 중기에 걸쳐 반구대 바위 절벽 일대를 신성한 제의의 공간으로 삼던 사람들에 의해 제작되었다. 각 작업층에 투사된 주술적 의도는 차이가 있지만 암각 작업이 주술적 효과를 가져 오리라는 믿음이 암각화 제작의 동기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반구대암각화 각 작업층의 제작집단은 태화강 중상류지역을 생활권으로 하였으며 수렵 ? 채집을 기본 생계수단으로 삼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후기 울산 태화강 중상류지역을 떠돌며 수렵 ? 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반구대암각화 제1작업층 제작집단은 태화강 상류의 지류인 대곡천의 계곡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성스러운 제의의 공간으로 적합한 곳을 찾았다. 이들은 반구대 바위 절벽 일대에 성스럽고 강력한 주술적 힘이 어렸음을 보았고 이곳의 큰 바위에 처음으로 암각화를 새겼다.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청동기시대 초기 사이에 울산 태화강 중상류일대를 생활권으로 삼았던 반구대암각화 제2작업층 제작집단은 조직적인 수렵에 능했지만 집단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사슴류의 수렵이 늘 순조롭도록 바위 절벽에 강력한 주술을 걸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수렵 제의를 정기적으로 행하면서 반구대 바위 절벽에 새로운 암각화를 지속적으로 새겨 넣었다.
반구대암각화 제3작업층 제작집단도 수렵 ? 채집이 기본 생계수단이었지만 수렵의 주된 대상은 대형 해양동물이었다. 청동기시대 전기를 전후하여 울산 태화강 중하류지역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던 이들은 해양어렵에 능했으며 생계 활동과정에 동해안에서 태화강, 대곡천으로 이어지는 수로를 적극 활용하였다. 샤먼이 주도하는 고래 제의 과정에 새겨진 고래 암각화는 제3작업층 제작집단의 자존감을 극대화 시켰다.
반구대암각화 제4작업층 제작집단은 앞 시기의 작업층을 부분적으로 훼손하고 있으며 이전과는 다른 표현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제3작업층 제작집단과 구별되는 존재였음이 확실하다. 청동기시대에 많이 쓰이던 깊은 선 새김과 갈아넣기 기법에 매우 익숙한 것으로 볼 때 제4작업층 제작집단도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중기 사이의 한 시기에 태화강 중상류지역을 생활권으로 삼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한국 선사 및 고대 초기 예술의 동향
Ⅲ. 반구대암각화의 양식적 특징 및 내용
Ⅳ. 반구대암각화의 제작 시기 및 제작 집단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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