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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종성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40호
발행연도
2012.11
수록면
7 - 35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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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서울 경기 일대의 신도들 사이에서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불승(佛僧) 처경(處瓊, 1652~1676)이 소현세자의 유복자를 자처하며 왕실 및 고위관료들에게 이를 공지할 생각으로 접촉을 시도하다 결국 관에 고변되어 구금되기에 이르렀다. 처경은 종교적 영험성에서 비롯된 생불의 이미지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인 권위(소현세자의 유복자)마저 확보하려다 끝내 심문을 받고 죽음에 이른 비운의 승려였다. 처경사건은 숙종 2년(1676) 11월 1일부터 16일까지 약 보름간 진행되었으며, 이에 대한 과정과 시종이 ??요승처경추안(妖僧處瓊推案)??(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그대로 실려 있다. 우리는 본 추안자료를 통해 당시 추국관들의 손을 거쳐 기록된 민중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민중의 신앙적 열망과 욕구는 물론, 저항 및 반란의 담론과 실천을 읽어낼 수 있다.
1676년 11월 16일 처경은 요망한 글과 말을 지어내 대중을 미혹시켰다는 죄를 받고 용산 당고개에서 처형되었다. 그것으로 추안은 끝이 났지만, 처경사건은 일단락되지 않았다. 그가 죽고 난후 11년이 지난 1687년에 처경은 해주 무당의 신당에 의례의 대상으로 되살아났다. 살아생전에 생불(生佛)로 추앙받던 처경이 죽은 뒤 무당의 제사를 받으며 대중들로부터 영험한 신령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처경은 국가로부터 기억을 금지당한 요승(妖僧)일 뿐이었지만, 민중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생불로 기억되었고,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려는 무당에게는 간과할 수 없는 의례적 자산으로 활용되었다. 해주 무당의 신당이 파괴되고 무당이 절도(絶島)로 유배되는 조처가 내려졌지만, 처경으로 촉발된 생불신앙은 이후 황해도 일대의 민중과 무당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요승처경추안
3. 처경의 생애: 두 가지 이야기
4. 생불로 추앙된 처경
5. 무당의 제사를 받은 생불
6. 처경 이후의 생불신앙
7.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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