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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우선 (목원대)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37호
발행연도
2012.9
수록면
93 - 12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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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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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목적은「기독신보」의 폐간과정 연구를 통해 한국교회연합 차원의 바람직한 기독교 저널리즘의 운영 방향을 찾기 위한 것이다.「기독신보」는 한국언론의 암흑기로 표현되는 일제강점 초기인 1915년 초창기 한국 교회의 장?감 교파연합 신문으로 창간되었으나, 1937년 7월 28일 사령 1129호를 마지막으로 발간한 후 휴간을 거쳐 폐간되고 말았다.「기독신보」는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를 제외한 유일의 신문이었고, 특히 한글로 제작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들에게까지 뉴스를 전하는 언론의 역할을 해냈다. 1920년 일제의 식민지 정책이 기존의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하면서 한글신문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한국언론의 명맥을 유지한 유일의 신문으로서 가치가 크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기독신보」가 한국교회 연합의 매개체로서, 한국인을 위한 언론으로서 공헌을 해냈지만, 한국교회 내 헤게모니 싸움의 한복판에서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기독신보」의 폐간은 한국교회는 물론 한국사회에 커다란 손실로 지적될 만큼 아쉬운 점이 많이 있지만, 바람직한 교회연합 사업의 방향을 찾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신문의 폐간 과정을 살펴보는 의의가 있다 하겠다. 특히 한국교회연합 신문의 필요성이 절실한 오늘날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를 위해 요구되는 바람직한 기독교 저널리즘의 출현과 준비를 위해서도「기독신보」의 폐간 과정의 역사적 교훈을 반추하는 연구와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기독신보」의 폐간 과정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한국교회가 해결해야할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최초의 한국인사장으로서 많은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사장에 취임한 전필순은「기독신보」가 이어온 민주적 경영방식의 전통을 사장 1인 중심체제로 전환하고,「기독신보」의 소유권을 주장 및 행사함으로써, 조선예수교서회와의 돌이킬 수 없는 갈등 상황이 전개되었고, 폐간의 파국으로 끝났던 것이다.「기독신보」의 전통은 한국인과 선교사가 발행인ㆍ편집인ㆍ사장ㆍ주필(주간) 등의 직책을 협력형태로 나누어 맡아 민주적으로 경영해온 것인데, 한국인사장이 등장하자마자 발행인, 편집인을 겸직한데다 곧이어 편집국장까지 겸무하는 CEO의 단독경영으로 돌아선 것이다. 경영권이 한 사람에게 집중됨으로써 조선예수교서회 건물에서「기독신보」짐을 꾸려 이사 가는 행위까지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기독신보」의 발행인이 서양선교사라고 해서 서양선교사 개인의 소유가 아니었던 것처럼, 전필순이 발행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개인신문이 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기독신보」의 폐간 과정에서 볼 수 있듯이,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주장이나 주도로서는 교회연합 신문이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없으며, 한국교회가 민주적으로 함께 참여하여 운영하는 것만이 성공을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 하겠다.

목차

1. 머리말
2. 한국인 사장의 취임
3. 독립경영을 위한 노력
4. 논조 및 지면의 변화
5. 적극신앙단 사건과「기독신보」
6.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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