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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영구 (부산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족문화 한국민족문화 제44호
발행연도
2012.8
수록면
319 - 352 (34page)
DOI
10.15299/jk.2012.08.4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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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제철 입지는 1972년부터 총 9년에 걸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으로 한 수도권 입지와 비수도권 균형발전의 입지시각이 대립하고 있었다.
결국 제2제철 입지는 남해안 낙동강하류지역으로 결정되었다가 수도권으로 이동하였고 몇 차례 재확정을 거쳐 다시 남해안 광양만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중화학공업화 초기 추구되었던 지역균형발전논리가 점차 효율성 우선의 논리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1979년 박대통령 사후 일어난 소외지역 균형발전 논리가 주요하게 작용하는 한국현대사의 주요 정책결정 변화를 보여준다.
광양만으로 최종 입지가 이동한 것은 1979년 박대통령 사후 일어나고 있었던 중화학공업화 비판과 소외지역 불균형발전, 전라도 소외 비판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분명히 계속된 공식적인 합의와 조사와 결정을 거부하였던 박태준의 강한 집착도 역할을 하였는데 박태준의 주장은 기술적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 있지만 사실 박대통령과의 공감이라는 다른 요인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제2제철계획
3. 초기 입지논쟁
4. 후기 입지논쟁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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