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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연민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65
발행연도
2012.3
수록면
203 - 239 (3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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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본은 선덕왕대(632~647) 활동한 신라 최초의 밀교승려이다. 그는 선덕왕의 치병 과정에서 흥륜사의 법척과 대립하였다. 법척은 여우와 함께 제거되었는데, 양자는 같은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곧 법척은 신라의 토착신앙과 혼효된 승려였다. 치병주술에 있어서 밀본과 법척의 차이는 『약사경』에 있다. 법척의 치병주술이 무격과 다르지 않다면 밀본은 구체적인 불경에 근거한 『약사경』 신앙을 내세웠다. 그런데 『약사경』 신앙은 매우 보편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어느 종파에서나 부각될 수 있다. 결국 밀본의 치병주술은 토착신앙과 혼재된 불교를 배격하면서 보편적인 불교신앙을 신라사회에 정립시키고자 한 것이다.
밀본이 선덕왕대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륜계의 정치적 부상이 있었다. 그는 중대왕실의 지지자인 김유신?김양도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 아울러 7세기 중반 중국 밀교의 변화도 주목된다. 이 시기는 8세기 중기밀교가 완성되기 직전에 해당한다. 이때 현세이익적인 다라니 중심의 초기밀교가 성불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개별적으로 나타났던 밀교적 요소들이 집대성되기 시작하여 밀교의 교학이 체계화되고 있었다.
그런데 밀본의 『약사경』 신앙은 보편적 성격이 강하여 명랑과 혜통에 비해서 밀교의 특성이 약하게 나타났다. 이들의 차이점은 토착신앙에 대한 입장에서 분명하게 나뉜다. 명랑과 혜통은 토착신앙과 대립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포용하려고 하였다. 대립만을 강조했던 밀본보다 그들의 밀교사상이 좀 더 성숙했음을 의미한다. 다만 밀본이 중고기 후반에 활동했다면 명랑과 혜통은 교학불교가 만개하기 시작했던 중대 전반기의 승려였다. 즉 밀본에게는 토착신앙과 혼재된 불교를 배척하고 정법의 신앙을 정립하여 신라사회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머리말
Ⅱ.중고기 불교의 밀교적 요소
Ⅲ.密本의 치병주술과 『藥師經』 신앙
Ⅳ.密本의 밀교가 지닌 사회적 의미
Ⅴ.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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