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진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5권 제1호
발행연도
2012.5
수록면
143 - 189 (47page)
DOI
10.17068/lhc.2012.05.15.1.143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연구는 『묵재일기』에 나타난 자료를 통해 16세기 중엽 성주의 지방사회에서 ‘주비’를 차정하고, 세금을 거두기 위해 ‘주빗기’라는 문서를 작성하여 사용하는 방법을 살폈다.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점을 밝힐 수 있었다.
『經國大典』에서 오가작통제가 규정되고, 성종 5년에 전세에서 통납을 시행하였다. 이는 이른바 ‘경국대전 체제’가 재정사적으로 완비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주비와 주빗기는 국가 재정의 운영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주비는 지방사회에서 인보조직을 책임지면서 부세응납의 역을 담당하는 이중적 역할이 부여된 직책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어디까지나 그 기원인 인정과 전결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편제 기준이 점차 통합되어 가던 시대적 배경을 전제한 것이었다.
8결을 기준으로 하는 통납이 국가에 의해 공인되면서 역역과 공물의 수취에서도 주비의 역할이 커졌다. 이는 16세기 중엽 성주지방에서 시행된 역역의 분정과 공물의 수취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역역의 수취에서는 8결이 더 중요한 기준으로 적용되었지만, 공납제의 운영에서는 매 1결 역시 중요한 공물의 분정과 수취의 단위로 기능하였다. 인정의 다과를 고려하는 예가 일부 남아 있었지만, 전결기준의 역역과 공물의 수취가 훨씬 일반화되었다. 이는 17세기 이후 전결을 중심으로 한 결세 중심의 수취체제를 제도화할 수 있는 기반이 이미 16세기 중엽 성주 지방에서는 확립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16세기 성주 지방의 주비와 주빗기의 위상
3. 力役의 分定과 收取에서 주비와 주빗기의 역할
4. 貢物의 分定과 收取에서 주비와 주빗기의 역할
5. 맺음말
〈부록 1〉조선 후기 지리지에 나타난 坊里와 『?齋日記』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방리
[참고문헌]

참고문헌 (47)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