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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안재석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동국대학교 영상미디어센터 씨네포럼 씨네포럼 제14호
발행연도
2012.5
수록면
417 - 441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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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대’ 운동의 모토는 ‘한국영화의 예술화’였다.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던 1970년대 한국영화계의 암울한 현실 하에서 이들은 “훌륭한 영화, 예술적인 영화일수록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다”고 믿었고, “영화예술의 잃어버린 본령(本領)을 되찾을 때 그때 불황은 분명히 없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예술적인 영화’, ‘영화예술의 본령’이란 194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을 시작으로, 폴란드, 스웨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등 서구 도처에서 등장한 ‘뉴 시네마(New Cinema)’, 즉 모더니즘 영화를 지칭한다. 특히 이들 각국의 ‘뉴 시네마’는 “영화의 본질을 다시 정의하려는 시도였고 영화를 예술로 다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었으며 영화와 현실, 영화와 관객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한국영화는 도무지 영화다운 영화를 탄생시켜 본 적이 없다”고 여겼던 ‘영상시대’ 감독들에게 훌륭한 본보기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영상시대’ 활동기간의 작품들은 그들의 믿음과 확신과는 달리 관객들의 호응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1977, 홍파)와 〈한네의 승천〉(1977, 하길종)은 서울에서 개봉조차 하지 못하고 단지 제작사에 외화 수입 쿼터를 수혜케 한 요식행위의 작품이라는 수치스런 신세로 전락해버리기까지 했다.
물론 이들 작품에 대해 “이전 작보다 떨어지는 태작(怠作)들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기 작품들이 이들의 이전 작품들, 더 나아가 ‘영상시대’ 해체 이후의 작품들과도 뚜렷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그저 ‘태작’이라고 치부하기엔 억울한 나름의 훌륭한 성과물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이 추구했던 ‘한국영화의 예술화’가 그저 말뿐인 호언(豪言)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목차

1. 들어가며
2. ‘뉴 시네마’를 향하여: 모더니즘 영화의 형식적 실험
3. ‘한국적 영상’ 찾기: 토착문화에 대한 관심
4. 불안한 입지적 딜레마: 대중소설의 영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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