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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동철 (부산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41집
발행연도
2012.4
수록면
223 - 262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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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9세기에 왜관은 부산에만 존재하였다. 왜관은 조선과 일본, 조선인과 일본인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일상 등 다양한 측면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왜관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관계는 왜관 안의 개시와 왜관 밖의 조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개시는 국가가 공적으로 인정한 무역상인이 매달 3일,8일,13일,18일,23일,28일, 즉 한달에 6번 실시하는 무역이다. 개시는 開市大廳, 開市廳이라 불리는 특정한 장소에서 행해졌다. 폐쇄된 방안이 아니라 공개된 대청에서 무역이 행해졌다. 개시는 개시무역 또는 사무역으로 불린다. 개시무역을 담당했던 조선인 무역상인을 흔히 동래상인이라 불렀다. 개시에서는 중국산 생사나 고급 비단, 조선산 인삼, 일본산 은이 주로 거래되었다.
조시는 왜관의 정문 앞 노천에서 매일 열리는 아침시장이다. 조시에서는 쌀, 생선, 야채, 과일 등 소량의 생필품이 거래되었다. 조시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왜관 주변 조선인 마을에 사는 일반민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개시와 조시는 시간, 공간, 주체, 상품 등 여러 측면에서 그 성격이 다른 경제 활동이었다. 개시가 점차 쇠퇴하거나, 조시가 점차 활발해지면서, 양자의 경계는 점차 무너졌다. 조시는 일용 잡화시장에서 대규모 미곡 판매시장으로 바뀌어 갔다. 조시에 참여하는 상인도 점차 전업적인 상인으로 바뀌어 갔다. 조시에 참여하는 상인들이 왜관 안에 들어가서 상업활동을 하는 것이 증가되어 갔다.
잡상인과 같은 일반 상인이 왜관 안에서 합법적인 상업활동 공간을 확보하고,개시 상인의 특권을 일부 나누어 가졌다. 왜관의 안팎으로 구분되어 있던 개시와 조시의 주체가 왜관 안에서 혼재하게 되었다. 개시와 조시는 왜관에서 이루어진 양국 상인의 경제활동은 물론, 왜관 주변 지역민의 일상생활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주제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시간
3. 공간
4. 주체[상인]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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