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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민정희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회 제36호
발행연도
2011.7
수록면
197 - 22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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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祭는 장소, 목적, 굿 양상 등의 다양한 특성과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개념이다. 우선 야제는 ‘집밖’이라는 공간에서 낮에 시작되어 저녁 무렵에 종료되었다. 제의 목적은 망자의 넋을 해원하여 천도 하였으며, 질병이나 죽음의 빌미를 일으키는 寃鬼를 위무하거나 구축하고자 하였다. 경우에 따라 脫喪의 한 절차로도 행해졌다. 굿 양상은 무당이 주재하는 무속의례로 행해졌다. 野祭는 ‘野祀’와 混用 되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전까지 그 용례가 보이지만, 그 이후에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다. 곧 야제는 집 밖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행한 의례를 포괄하는 광의의 용어이지만, 본고에서는 주로 ‘집 밖에서 망자를 천도하는 굿’을 중심으로 야제의 한 단면을 살펴보았다.
경상도 성주지역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던 이문건은 중앙관료 출신으로 높은 유학적 식견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는 죽은 아들의 넋을 천도하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야제를 거행하였다.
단골무녀 이외에 좀 더 능력을 갖춘 무당이 초빙되어 야제를 주재하였다. 무녀는 야제를 지내기에 앞서 별도의 공간에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였다. 제의 과정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야제를 통해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에게는 가슴에 맺힌 恨을 풀어주는 주었다. 굿이 끝나면 무녀가 몰래 歸家하는 관행이 당시에도 있었다.
한편 흥미로운 점은 승려가 이문건의 집에서 야제에 필요한 제물과 장식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巫俗과 佛敎의 밀접한 상호관계성을 살필 수 있는 사례라 하겠다.
무속과 관련된 문헌자료가 그러하듯이 야제에 대한 내용 또한 매우 엉성하다. 따라서 16세기 야제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러나 당시에 무속식 천도굿이 야제라는 용어로 거행되었으며, 앙반사대부라 하더라도 이를 거부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야제의 개념
3. 야제의 양상과 특징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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