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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지혜 (경기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藏書閣 제26집
발행연도
2011.10
수록면
128 - 160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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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조선 후기 왕실 상장례 설행과정에서 대비의 역할과 의례 공간이 확대되는 과정을 연구한 논고이다.
조선왕실의 유교적 상장례 절차에서 여성의 역할은 빈소에서 곡림하는 것을 시작으로 장사지내는 무덤으로 시신을 祗送하는 절차까지만 참여할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 전기 상장례 공간에서 여성의 의례공간은 빈소와 산릉의 일부분에만 조성되었다.
그러나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면서 대비는 대행왕의 유교를 전해주고 새왕의 조언자 역할을 하면서 상장례 절차에 의견을 표출하였다. 이러한 대비의 의견은 왕실의 어른이며 대행왕의 부인 혹은 왕의 어머니라는 입장에서 존중받았다. 19세기에 이르면 대비는 왕실 어른의 역할을 넘어서 수렴청정을 통해 왕과 함께 정사를 결정하는 중심이 된다. 그에 따라 3년 상례 동안 적극적으로 의례에 참여하며, 새로운 방향으로 상장례 공간을 이끌어가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대비의 의례 확대를 통한 건축공간의 변화를 살펴보면, 혼전의 곡림청 공간의 형성이 중요한 변화로 볼 수 있다. 17세기 인조국장에서 장렬왕후의 혼전에 대한 망곡례를 시작으로 왕실 여성들의 혼전의례가 시작되었으며 그에 따라 혼전이 설치된 창경궁의 문정전 서북쪽에 위치한 숭문당이 혼전기간 중 왕실 여성의 곡림청이 되었다.
19세기가 되면 대비는 왕실 어른이자 왕과 함께 정치의 결정권을 갖는 수렴청정을 행하면서 정치의 중심에 서게 된다. 1800년에 수렴청정을 시행한 정순왕후는 정조의 국장에서 전례를 깨고 빈전을 환경전으로 혼전을 선정전으로 선택한다. 이러한 결정은 정조 국장 이후 순조와 헌종, 철종에 이르기까지 적용되어 19세기 궁궐 내 전각 활용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고, 궁궐의 주요 전각이 오랜 기간 상장례 공간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본 건물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본 연구에서 조명한 상장례 기간 동안 대비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상장례 공간의 변화과정을 충분히 고찰하고 빈전과 혼전에 있어 다양한 공간의 정립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국왕의 국장에서 대비의 역할은 간과할 수 없는 대상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왕실 상장례에서 대비의 역할 변화
Ⅲ. 17세기 이후 곡림청의 설치와 확대
Ⅳ. 19세기 대비전의 혼전 의례 공간의 세분화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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